중국 대외정책의 변천


24일, 습근평(시진핑)이 "한국전쟁은 항미원조전쟁(미국에 대항에 조선에 원정한 전쟁)으로 반제국주의적인 영웅적 전쟁이었다"라는 발언을 한게 계기가 돼서,
중국대외 대외정책 변화에 대해서 뉴스가 올라오는데, 간단하게 중국 대외정책 변화에 대해서 정리.


~1970년대 : 기미(羈縻) 정책

당나라 이후 전통적인 중국의 대외 정책. 주변 이민족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 지역의 수장이나 유력자를 회유해 관작과 물품을 주고 대가로 종주권을 인정하게 한다.
이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어렵다는 전제하게 명목상 지배 유지를 통해 지역안정과 중국의 이권을 취하겠다는 정책

1980년대 : 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의탁했을때의 고사에서 유래. 칼빛을 감추고 어두운 데에서 힘들 기른다.
당시 소련, 미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고 내부 발전에 치중하자는 의미.

1990년대 : 장택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될 일을 하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라는 뜻으로 직역되는데, 그런 의미보다는 이제 눈치만 볼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대등한 위치에서 파트너쉽을 맺자는 뜻에 가까워 보임.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국내에 인식시키는 계기

2000년대 : 호금도(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적으로 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겠다. 싸우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무시하면 큰 코 다치게 해주겠다라는 의미랄까.
갈등은 없으나 압력은 가하는 상태. 이때 부터 확실히 기조가 바뀌었는데, 모두들 중국 투자에 중독돼서 크게 인식하지 못함.

2009년 이후 : 돌돌핍인(咄咄逼人)

윽박질러 굴복시킨다는 의미.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해지면서 정책 기조 급전환됨.
(1) 달라이 라마 프랑스 방문 허용 ==> 에어버스 계약 취소하고, 프랑스 왕따 외교 ==> 프랑스 3개월만에 굴복, 티베트 영유권 인정
(2) 일본과 조어도 사태 ==> 희토류 수출금지 ==> 보름도 못버티고 일본 정부의 중국인 선장 석방
(3) 최근에 외투법인에 대한 세제 혜택 철폐, 위안화 절상은 니들 소관 아니라는 당당한 발언 등..



중국이 강하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냐만은,
중국이 스스로 원하는 Position과 Perception을 다른 국가와 다른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필연적으로 적든 많든 갈등을 수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Currecy war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war가 맞을지도..

어제 SBS 뉴스추적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와서 실망을 많이 하니, 개선해서 중국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한국이 돼야 한다라는 요지의 르포가 방영이됐는데, 보면서 내용과 상관없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었음.
중국이 "threat"이 될 수 있는 산업은 앞으로 거들떠도 보지 말라는 말도 많은데..
소국의 자본시장 참여자 그것도 큰 영향력도 없는 내 자신의 현재와, 돌돌핍인을 외치는 중국의 현재가 겹쳐지면서...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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