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는 왜 일류국가에서 골치거리로 전락했나

아일랜드. 대기근과 신대륙 이민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 나라는 80년 후반 이후 파격적인 감세와 외자유치를 통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7천불(2007년, PPP기준, CIA World Factbook)의 (숫자상의) 초일류국가가 되었다. 선진국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10년 이상 기록해온 아일랜드에 대해서 수많은 칭송이 뒤따랐다. 아일랜드 경제성장이 피크를 치기 직전인 2007년 초반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의 롤모델로 아일랜드의 성공담이 국내 언론에 의해서 집중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아일랜드와 유사한 곤경에 처해있는 스페인 역시 비슷한 시기에 금융개혁의 롤모델로 국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고속성장은 적극적인 해외 투자 -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유치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국의 90년대와 유사성이 있다. 대규모 FDI유입에는, 아일랜드의 정부의 파격적인 감세와 개방정책 때문이고, 이러한 정책은 80년대 중반 이전 최악으로 치달아 가던 아일랜드의 경제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97년 IMF구제금융 이후 경제구조의 급속한 변화가 큰 사회적 저항없이 발생했던 우리나라와 상황이 80년 중반 이후 아일랜드에서 펼쳐졌다고 생각하면 큰 무리 없을 듯 하다. 

87년 수상(Taoiseach)에 오른 찰스 호이(Charles Haughey, 1925-2006)는 아일랜드의 변혁을 촉발시킨 영웅이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로 파탄난 재정과 정부의 신용을 복구하기 위해 호이는 재정지출을 대폭 삼각시켰고, 그에 발맞추어 감세정책을 시행해 제조업과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법인세율을 10%로 1/4토막 냈다.  야당/노조와 함께 그 유명한 사회연대협약을 맺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이때부터 아일랜드 노동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으로 빠르게 변화되기 시작한다. 

완벽한 영어구사가 되고, 최선진국 수준에 준한 사회수준에, 안정된 정치환경, 전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 전폭적인 지원.. 유럽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아일랜드는 최적의 투자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아일랜드에 막대한 해외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1990년 이후 15년간 아일랜드에 유입된 FDI는 2,119억 달러에 달한다. 80년대후반~9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GDP가 400억불 미만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10년만에 유럽 첨단산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변모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아일랜드의 '규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국토면적은 남한의 70% 수준이고, 인구는 400만으로 우리나라의 1/10밖에 안된다. 1인당 GDP가 최고치였을 때에도 우리나라 보다 경제규모 면에서는 더 작았던 나라다. 그런 나라에 저렇게 많은 해외 투자 자금이 유입되었으니 소위 '대외의존도'라는게 어느 정도였을까. 2006년 기준, 외국인 기업은 아일랜드 전체 기업 중 숫적인 측면에선 12.2%를 차지했고, 전체 고용의 47.8%를 차지했으며, 수출의 91.7%, 전체 부가가치 창출액의 86.6%를 차지했다. 나라 경제의 90%를 외자기업이 설명해주고 있었단 얘기다. 수치 상으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호이 수상의 국가재정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과 사회 통합을 이뤄낸 지도력은 과연 역사에 길이 남을만 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 20년간 아일랜드가 걸어온 길은 '지나치게 과하다'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FDI에 기댄 경제성장은 영원할 수가 없다. 해외 투자를 원하는 자본은 한정돼 있고, 아일랜드의 경쟁자는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건 이미 90년대 후반부터였다. 90년대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과정을 마무리한 유럽의 동구권 국가들이 속속 아일랜드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임금은 아일랜드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이 낮았고, 유럽대륙과의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아일랜드 정부가 했던 것처럼 유사한 '당근'을 제공하는 동구권 국가들이 빠른 속도로 FDI 유치에 있어서 아일랜드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임금 상승 속도가 가파라지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아일랜드가 오히려 뒤쳐지기 시작하는 것이 역력했고, 여기에 중국의 부상으로 기업들의 해외 투자 초점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마침내 2004년부터 아일랜드의 FDI는 마이너스 -  순유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환율도 강세로 가면서, 기존 수출 산업의 경쟁력까지 약화되면서 아일랜드의 FDI-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은 급격한 쇠퇴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적 영웅 호이 수상의 계승자들 입장을 생각해보자. 세계 1등 국가를 만든 지도자의 대를 이은 사람들이 가진 부담이 얼마나 컸을까. 잘해봐야 본전이고 못하면 역적이 될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을 거다. FDI가 순유출로 전환됐다는 건 기존 모델을 고수할시 경제가 역성장할 수 밖에 없단 얘기다. 잘해도 칭찬 못받을 판에, 마이너스 성장 상황에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치가가 있겠는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아일랜드 정부는 내수 경기 Reflation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골로 가는 지름길'인, 국내 통화량 팽창을 통한 내수 경기 부양을 지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2004~2005년 시점의 글로벌 트렌드이긴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다급했고, 경제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리플레이션 정책이 좀더 효과적이며 좀더 급진적으로 일어났고, 국내 신용시장이 초 거대 은행 2곳에 의해 과점되었기 때문에, 리플레이션 정책이 매우 빠르고 방만하게 시행되었다. 

정부의 신용 창출 촉진과 통화량 확대에 따라, 아일랜드의 자산가격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국민들은 빚을 내 과감한 투자를 벌이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일랜드의 통계는 화끈하다. GDP대비 국내 금융자산 규모가 7.8배에 달했고 신용시장을 과점하는 양대은행의 예대율은 200%를 넘어갔다. 부족한 자본은 제조업 육성 때처럼 해외에서 조달됐고, 무한정 돈을 끌어들여 국내 부동산 시장을 오버슈팅시키고 자산가격 양등을 통해 침체되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감추었다.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너무 심한 숫자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GDP대비 금융자산은 2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2007년말 나라 망한다고 떠들던 시절에도 국내 금융기관의 예대율은  최고 130~140% 정도에 그쳤다. 

익히 알다시피 2007년 3분기부터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도 그랬고, 다른 나라보다 많이 빠졌다. 양대 은행의 자산은 급속히 부실화되기 시작했다. 은행 사정이 나빠지면서 18~19세기에나 구경했을 법한 '뱅크런(대량의 예금 인출 사태)' 현상이 세계 1등 국가 아일랜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냥 냅두면 아일랜드 경제는 붕괴로 가는 거니, 정부가 가만 있을 수가 있나. 2천억불 이상의 정부 지급보증을 민간 은행에 제공했고, 대규모 자본확충에도 정부 자금이 들어갔다. 2007년 GDP대비 25%에 불과했던 정부부채는 3년만에 77%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부실화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고, 워낙 외화 자금을 많이 끌어들였던 터라, 아일랜드의 심각한 외화 유동성 위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지금 EU와 IMF는 아일랜드를 '구제'하려고 하고 있는 거고, 세계 1등 국가의 자존심에 애써 구제를 외면하려던 아일랜드는 채 반년을 못버티고 빗장을 열려하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가 보여준 '영욕의 30년'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운명을 여실히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외 의존을 통한 고속성장이, 국가간 경쟁이 격화될 때 어떻게 한 방에 훅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통계 숫자만 본다면 사실 아일랜드보다 일본이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GDP의 217%에 이른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도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1억2천 인구가 거대한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1400조엔의 가계금융자산을 바탕으로 국채의 93.8%를 국내 자본이 소화하고 있다. 일본은 아무리 위태로워도 아일랜드와 같은 처지는 될 수가 없다. 

아일랜드의 상황이 주는 시사점이 참으로 많다. 국가 경제라는게 결국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소규모 개방경제가 경제적 안정성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가르침을 준다. 한국은 어떤 측면에서 아일랜드와 일본의 중간 정도에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내수 규모가 작다는 측면에서는 아일랜드에 가깝지만, 97년 금융위기로 한 번 얻어맞은 이후 국내 금융 구조가 상당부분 견고하고, 국내 제조업이 강한 자생력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는 아일래드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도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라서 경기가 침체되고 여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리스크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MB정부 이후 정책기조가 이런 리스크를 확대하는 쪽으로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중심, 수출중심, 대외경쟁력 최우선의 정책기조가 내부적인 자생력과 내수 시장 성장을 답보상태에 머물게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경제발전'과 '글로벌 국가'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을 버리고, '기업들이 돈많이 버는 나라'가 아니라 '하부구조가 튼튼하고 개개인 행복한 나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게 아일랜드가 주는 시사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