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가 주는 희망과 애니팡이 주는 우려

십수년전에 등장한 비쥬얼드(Bejeweled)는 같은 보석을 연달아 세 개 이상 맞추면 되는 단순한 퍼즐게임이었지만 스마트폰의 전(前)단계라고 할 수 있는 팜(Palm) PDA의 터치스크린들을 수없이 고장내던 지독한 중독성을 가진 게임이었다.  팜PDA는 스마트폰처럼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스타일러스펜을 썼기 때문에, 비쥬얼드를 즐기던 사람들의 PDA 화면에는 스타일러스로 반복하여 긁어댄 흔적 때문에 바둑판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후 수십 수백가지의 비쥬얼드 카피 게임들이 나왔는데, 그 중 가장 최근 버젼이 애니팡이다. 애니팡의 컨텐츠에 우수한 점이 있다면 그건 비쥬얼드를 잘 베꼈기 때문이다.


   

비쥬얼드의 플레이 화면과 애니팡의 플레이 화면


여러 카피 게임 중에서 유독 애니팡이 특별해진 것은 카카오톡에 '하트'라는 것을 얹어 바이럴 루프(Viral Loop, 사람들의 인맥 네트웍을 타고 입소문이 만들어지는 현상)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싸이가 유튜브를 통해 단 두달만에 전세계적 셀러브리티가 된 것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현상이다.

 

현대 경제에서 "장사"의 성패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1)상품의 질(2)유통채널의 파워 2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애니팡의 성공과 싸이의 성공을 각기 상품의 질과 유통채널의 파워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비슷한 성격의 바이럴 루프 성공사례인 애니팡과 싸이 성공 중에서 나는 싸이로부터 사회에 주는 어떤 희망같은 것을 느끼고, 반대로 애니팡으로부터는 약간의 우려를 느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데뷔 때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는 요즘의 아이돌 그룹과 달리 애초에 수출을 위해 기획된 컨텐츠가 아니었다. 당연히 초창기부터 본격적인 해외 홍보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유튜브라는 전세계 컨텐츠 유통채널 안에서 자발적으로 단기간에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을 생각해보면, 싸이와 강남스타일은 (1)상품의 질 측면에선 한국적인 로컬컨텐츠가 세계에서 먹힌다는 희망을 주고, (2)유통채널의 측면에선 거대 미디어기업의 도움이 없이도 실력만 있다면 전세계인을 만날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강남스타일은 설사 그것이 일시적이라고 할지라도 독자적인 창의성의 개가이고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과 당당하게 맞짱 뜰 수 있다는 수평적 성공의 사례이다. 


하지만, 비쥬얼드를 베끼고 카카오톡에 얹혀지면서 대박이 난 애니팡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마찬가지로 상품의 질과 유통채널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1)핵심 컨텐츠라고 할 수 있는 게임성 자체를 카피했기 때문에 상품의 질 측면에선 머리 싸매고 세상이 없던걸 만들어 보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힘 빼지 말고 있는거나 잘 베껴봐"라는 꼼수를 생각나게 만들것 같고, (2)카카오톡이라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모바일 미디어의 선택을 받은 컨텐츠와 그렇지 못한 컨텐츠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성공하려면 묻어가야 한다'라는 삶의 기술을 새삼 각인시킨다.  


만약, 카톡에 애니팡 같은 게임이 수 천개가 올라가고 그 게임들이 모두 '하트'를 날려댄다고 생각해보자. 누가 카톡을 좋아하겠는가. 카톡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마비되고 아마도 사람들은 카톡을 '스팸톡'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것이다. 카톡은 막강한 미디어고 모바일포탈이지만 태생적으로 선택된 소수에게만 기회를 주는 모델이다. 한 마디로 카톡의 '게임하기'는 한정된 공간을 비싸게 파는 전형적인 '지대추구형' 모델이다.


카카오톡에는 우리나라 1세대 인터넷벤처 재벌들 다수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카톡의 '모네타이제이션(트래픽을 매출로 연결하는 방법)' 전략은 다분히 과거 한국적 인터넷 기업들이 부렸던 전략의 동어반복처럼 느껴진다. 이게 뭔 뜻인지는유튜브와 네이버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유튜브는 누구나 컨텐츠를 올릴 수 있고, 이 컨텐츠들이 수평적으로 경쟁하는 와중에 양질의 컨텐츠가 자동적으로 선택되는 공간이다. 반면 한국의 포탈 네이버는 첫 화면에 어떤 컨텐츠가 올라가냐가 컨텐츠의 성공여부에 가장 중요하고, 첫 화면에 그 컨텐츠를 올릴 수 있는 '편집권한'을 네이버가 독점적으로 갖는다. 경쟁이 아닌 "편집"에 의해서 작동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카카오톡의 게임하기도 유사할 수 있다. 카카오톡도 강력한 파워를 갖춘 미디어로 변신하고 있지만, 대량의 컨텐츠를 동시 유통시킬 수 있는 수단은 아니고, 필연적으로 '한정된 공간을 비싸게'파는 모델로서 운영자의 '편집'이 들어갈 수 밖에 없어서 네이버로 대변되는 한국적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우이긴 하겠지만, 유튜브는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인데 반해 카톡은 한정된 플레이어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애니팡의 성공은 대단한 것이고 많은 이들을 창업의 길로 이끌었지만, 어떤 측면에선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도전적인 사람들의 창작 욕구에 찬물을 끼얹었고,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막강 유통채널을 통해 성공을 이루면서 '컨텐츠만 좋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순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애니팡의 우울한 이면이다. 


싸이를 통해서 "할수 있다.", "된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애니팡과 카톡을 보면서 "지금 미국에서 뜨고 있는게 뭘까", "사업은 역시 장사",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유통하느냐지", "강력한 파트너가 있어야 돼"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이야 초기니까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애니팡과 카톡과 같은 현상이 지속되었을때 웬지 창의성을 가진 개발자들 보다는 약삭빠른 장사꾼이 득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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