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에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대손과 재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승려이자 미국 대학 교수이신 혜민 스님께서 쓰신 책의 제목이다. 정신없이 욕심에 찌든 삶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면 자신의 온전함과 존귀함이 보이면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라는 좋은 내용의 책이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 회계의 세게에서 "멈춤"으로 인해서 보이는 것들은 이렇게 긍정적인 것들이 아니다. 재무제표에서의 "멈춤"은 매출성장, 자산성장, 궁극적으로 자기자본 성장의 중단을 말하는데 이러한 국면에 들어갔을때에는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악질적인 계정들이 갑자기 대두되기 시작한다. 대손과 재고이다. 

사실 굉장히 기본적인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투자자나 애널리스트들 조차 종종 혼동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원래 기본적인 것을 수록 더 많이 무시되기 마련이다. 복잡한 회계는 집어치우고, 의류업과 금융업을 예를 들어 직관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 옷장사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다양한 종류의 옷들을 전시해야 할 것이다. 여러 종류의 옷들 중에 잘 팔리는 것도 있고 안팔리는 것도 있다. 잘 안팔리는 옷이 다 팔릴때까지 매장을 가만히 냅둘 수는 없다. 그렇게 했다간 유행에 뒤쳐지는 매장으로 소문나 손님이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이 빠지는 대로 계속 신제품을 집어 넣는다. 매장을 연 첫달 100벌의 옷을 놨는데 그 중에 20벌이 한달이 다 가도록 안팔렸다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 악성재고의 비율은 20%가 된다. 하지만, 팔린 80벌을 채우기 위해서 다음달 신상 80벌이 새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한달뒤 이 의류회사는 총 180벌의 옷을 만들어 20벌의 악성재고가 있는 것으로 된다. 악성재고 비율이 11%. 반으로 꺾인다. 물론 새로 만든 80벌의 옷 중에서도 악성재고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신상이므로 재고로 분류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악성재고는 20벌에 그친다. 만약, 이 회사가 두번째달 매장을 하나 신규로 냈다면? 두번째 달에 2호점을 출점하고 여기에 100벌을 새로 갖다 놨다면 총 생산 280벌에 악성재고 20벌. 악성재고 비율은 7%로 하락한다. 2호점에 있는 물건 역시 모두 신상이므로 아직 추가 악성재고는 없다. 이게 성장의 효과다. 의류업에서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고 상품 종류를 늘리고, 매장수를 늘리는 국면에서는 옷이 좀 별로 안팔리더라도, 전체 재고에서 악성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재무제표상의 숫자만 보는 외부 투자자라면, 이 의류업체의 매출이 굉장히 활성화되있고 악성재고 없이 거의 모든 옷이 잘 팔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회사 내부인이라도 확장기에는 자신들의 재고 수준이 낮다고 착각하게 되는 일이 많다. 갖 만들어낸 뽀송뽀송한 신상들을 보면서 이 물건들이 곧 창고에 장기간 쳐박힐 악성재고가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인간으로선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류업체의 사업이 어느 성숙되었거나 혹은 수요가 줄어서 신상품 출시 빈도를 낮추고, 신규 브랜드 없이 기존 브랜드 관리 위주로 전략을 짜고, 신규 매장 출점도 자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성장기 여기저기 깔아놨던 물건들에서 쉴새없이 재고가 쌓인다. 옷은 잘 팔리는 것 같은데, 악성재고 비율을 계속해서 늘어난다. 어느 순간 내부인도 외부인도 회사에 재고가 과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격적인 전술 보다는 일단 재고 회전율을 높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고, 할인판매 등을 통해 재고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마진율은 떨어지고, 할인해도 안되는 재고는 불태운다. 이렇게 되면 재고에 대한 대손 비용이 늘어나 마진율 하락폭은 더 크다.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다가 그 성장세가 멈추게 되면, 사실 사업 자체가 쪼그라드는 것은 아닌데 이익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재고관리가 중요한 의류업에서는 매출 성장 속도에 따라서 재고비율과 대손비용이 일정한 사이클을 보이게 된다. 이런 사이클을 생각하지 않고, 재무제표상의 숫자만 보고 회사의 이익을 예측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최근 전문적인 애널리스트들이 모 패션 회사의 재고가 감축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많은데, 이 회사는 위의 예에서 매출 성장이 정체되고 악성 재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재고를 관리하고 대손비용이 올라가는 국면에 있는 회사이다. 재고를 줄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뼈아픈 성장 정체기의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다시 고성장 국면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이익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조업에 악성재고가 있다면, 금융업에서는 연체채권이 있다.  

금융업 중에서 은행이나 캐피탈 같은 곳은 대출을 내보내고 이에 대한 이자를 받아 이익을 낸다. 대출에는 만기가 있다. 만기가 됐을 때 고객이 돈을 갚지 못하면 연체채권이 되고, 이 채권에 대해 금융기관은 대손비용을 설정한다. 은행의 건전성을 볼때 흔히 전체 대출 자산 대비 얼만큼의 연체채권이 있는지를 본다. 건전한 금융기관이라면 전체 자산에서 연체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고, 투자자는 이 비율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금융회사의 자산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채권 관리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금융기관조차도 연체 채권의 비율을 굉장히 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화시켜서 만기가 한달 짜리 대출만 취급하는 금융기관이 있다고 해보자. 사업을 개시한 첫달 100억원의 대출을 내보냈다. 한달 뒤 이중 20억원이 연체되었다. 월말로 따지면 연체율이 20%이다. 하지만 다음달 곧 100억원의 신규 대출을 또 내보낸다. 전체 자산은 120억이 되고, 아직 신규 대출 건들은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연체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자산 120억 중에 20억이 연체이니 연체비율은 17%로 떨어진다. 연체한 사람들이 돈을 갚은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건전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자산이 성장하는 국면에서 연체율은 자연스럽게 지속 하락한다. 역시 외부인 입장에서 이런 추이를 대충 보다보면 이 회사의 대출관리 능력이 굉장히 개선되고 있는것처럼 보이고 향후에도 이런 우수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단지 이 회사는 자산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건전성 관리가 개선되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최근 2~3년간 연 30~40%씩의 고성장을 거듭해온 모 금융회사가 보여주는 현재 수준의 퍼포먼스 - 이익율이 성장이 정체되는 내년에도 지속될것으로 가정하고 수익을 예측한 애널리스트 리포트가 역시 또 있는데 이 역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간과한 것이다. 

의류, 금융이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하는 예는 거의 전 산업에 걸쳐서 존재한다. 매출 성장이 정체되었을때 자산 성장이 정체되었을때 비용의 이슈가 예상 밖으로 굉장히 크게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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