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2천년대 초반 포털사이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2000년까지 국내 인터넷 포털 시장은 대여섯개의 유력 사이트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그중에 2000년 하반기 '자연어 검색'을 들고나온 엠파스는 타 포털사이트 대비 압도적인 검색결과를 보여주며 시장을 점차 장악해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포털 시장은 부지불식간에 네이버 독주체제로 바뀌었고 이후 3-4년 남짓한 단기간에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사실상의 독과점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과 인지도 양면에서 1등이 아니었던 네이버는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나. 이유는 비교적 간명하다. 



#1. 태생이 다르다. 


네이버는 1998년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시작한다. 당시 삼성SDS 내에는 검색엔진/포털사이트를 개발하던 3-4개 팀이 있었고 삼성SDS는 이 팀들을 모두 네이버로 합쳤 주었고 초기 자금을 대주며 지분 19.9%를 확보한다. 


즉, 네이버는 시작단계부터 대기업 수준의 인력풀을 갖고 있었고 삼성으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아 초기상황이 비슷한 시기의 다른 벤처기업과 다르다. 당시 국내 4대 PC통신 서비스의 하나였던 삼성SDS의 유니텔은 광고영업의 상당부분을 네이버로 밀어주었다. (이해진 사장이 사내에서 추진되던 신사업들을 통합하는 주역이 되고 이후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삼성그룹과 연관된 이해진 사장의 개인적인 배경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네이버는 자본금 5억으로 창업해서 창업 1년 만에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0억이라는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한다. 당시 인터넷 버블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숫자였겠지만, 좋은 인력풀/삼성과의 지분관계/유니텔의 지원 등 네이버만이 가진 백그라운드도 대규모 투자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1999년 당시 코스닥 대장주였던 새롬기술이 점유율 상위권의 포탈들을 제껴두고 하필 네이버와 합병 협상을 진행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네이버는 시작단계부터 골방에서 코딩하는 전형적인 벤처와는 태생이 달랐다. 



#2. 한게임 인수


창업 직후 100억을 투자받았지만 2000년까지 네이버의 연간 매출액은 미미했다. 네이버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포탈 사이트들이 수익원 창출에 애를 먹고 있었고 모두 적자상태였다. 당시에는 검색광고라는 지금은 일반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활성화돼있던 배너광고도 가격과 수요 양면에서 지금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포탈사이트의 비즈니스는 표류하고 있었다. 유력 포탈사이트들이 꽤 많은 투자를 받아 현금을 쌓아 놓기는 했지만 매출원이 없어 현금이 말라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2001~2002년 포탈사이트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네이버의 트래픽 순위는 2001년까지도 5위권에 불과했고 인지도도 낮았다. 1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받긴 했지만 네이버도 손실을 감당하면서 계속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때 이해진 대표의 대학교 동기이자 삼성SDS 입사동기인 한게임의 김범수 대표가 등장한다. 1999년 한게임을 창업한 김범수 대표는 서비스 개시 1년만에 전세계 게임사이트 중 방문자 1위, 회원수 1위의 사이트를 만든다. 중독성 높은 고스톱/포커 웹게임을 서비스했기 때문이다. 2000년에 이미 한게임의 매출은 100억에 육박했고 이익률이 매우 높은 캐시 박스였다. 김범수 사장이 5위권 포탈인 네이버와 합병한 것은 이해진 사장과의 인연과 네이버가 가진 백그라운드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튼 한게임은 2005년까지 네이버 전체 매출의 절반을 점했고 이익의 대부분을 기여했다. 한게임 덕분에 네이버는 창업 3년만에 연 100억 이상의 현금이 따박따박 벌리는 사업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재무적인 측면에서 타 포털사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네이버가 2002년부터 당시 떠오르는 미녀배우 한가인을 기용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서 시장을 장악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네이버가 부각되기 전에 시장을 주도했던 엠파스는 1위로 올라선 뒤에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갖고  있는 현금은 벤처캐피탈로 부터 받은 20억이 전부였다. 네이버가 자금을 풀며 시장을 장악해 나갈때 엠파스는 애초에 게임이 될 수가 없었다. 



요즘 새삼 네이버가 국내 인터넷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 같다. 네이버의 모든 해악은 시장의 독점적 사업자로서 인터넷 사용자와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연결해주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포탈'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모든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에 비롯된다.  영화정보, 주식정보, 맛집정보 등 모든 정보를 네이버 서버가 독식해버려 다른 신생 인터넷 기업이 컨텐츠만을 갖고 시장에서 승부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네이버의 주 사업분야는 물론, 네이버가 직접적으로 영위하지 않는 분야에서도 급성장하는 기린아가 나타나는 것이 네이버로 인해 저해 내지 방해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 독점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당연한 행위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점적 지위를 얻었다는 것은 박수받을만 하다. 하지만, 네이버의 부각에는 태생적인 차별성이 있었다. 또, 국내 최고의 인터넷 기업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원동력이 초창기 한게임과의 합병을 통한 '중독적인 인터넷 도박'의 운영이었다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지금도 이익기여도 측면에서 한게임의 고스톱 포커는 절대적이다.) 


네이버의 초기 성장과정을 생각하면 기업의 성공과 성장,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 확보의 근간에는 결국 경제적인 요인이 자리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창업자의 열정과 창업멤버들의 기술력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시발점일 뿐이지, 그 사업을 윤택하게 만들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시장규모가 작고 창업가가 기업을 만들고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곳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만약 창업을 하고 싶다면 당연히 아이디와 열정이 우선 있어야 겠지만, 실행을 결정하고 난 뒤에는 곧 바로 사업을 지속해 승부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어떻게'이지 '무엇'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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