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가격 급락이 연장될 때의 위험성

이 글을 쓰는 지금 COMEX 선물 6월물 기준으로 금 -7.5% 은 -9% 하락하고 있는데 전날 5%가 빠졌던 걸 생각하면 상품시장의 셀오프가 진짜 심하네요. 1980년 이후 한번도 없었던 폭락이라고도 하고, 지난 40년간 유례없는 폭락이라고도 합니다. 



금, 은 만큼은 아니지만 원유, 곡물 등 다른 상품시세도 귀금속 시세를 따라 전반적으로 속락하고 있는데 만약 상품시장의 이런 조정이 오늘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연장된다면 경제에 다음 두 가지 영향이 가능하다고 생각 됩니다. 


첫번째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품시세 하락은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를 낮춰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몇년째 디플레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은 아니지만 양적완화 무제한 연장의 주요 걸림돌이 '성장없는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품시세의 하락은 이러한 위험성을 소거해 정책상의 여유를 증가시켜 줄 수 있습니다. 저금리 하에서 막대한 유동성이 풀려나가는 가운데 물가상승없이 경제가 회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당연히 시장에 매우 긍정적이겠죠


두번째는 부정적인 관점입니다. 만약 상품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낮아지는 것이 단기적인 경기 회복 부진과 맞물린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주체들은 전세계적으로 과잉설비/과잉공급 문제가 잔존하는 상황에서 상품가격이 떨어지니 미래의 여러 가격들이 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것이고 이는 빈약한 인플레이션 기대감 속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전형적인 "유동성 함정" 상황이 됩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인플레 기대감이 없고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강해 현금만 쥐고 있으려는 유동성 함정의 상황이 펼쳐지면 통화정책의 소비진작 효과가 감쇄되면서 정책적 여지가 위축되게 됩니다. 유동성 함정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최근 일본에서 보여주듯이 가공할만한 수준의 정책 수단을 일시에 동원하는 아베노믹스식의 commitment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는 정치적인 부담이 많이 따르므로 자연스러운 이행이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우려는 디스인플레이션 부담과 정책 공백으로 연결돼 자본시장에 꽤 큰 하락 압력을 줄 것입니다.


두번째 가정을 훨씬 길게 썼듯이 저는 다소 비관적인 쪽입니다. 

이제까지의 금/은 시세가 버블이었다며 급격한 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경제에는 별 문제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상처를 남기지 않는 버블이란 없습니다. 이렇게 급격한 가격 조정은 투기적 숏셀러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전세계 금의 총량을 (추정치가 분분하지만) 17만톤이라고 보면, 그 가치는 7조달러를 조금 넘습니다. 지난 이틀의 거래일 동안 금 가격은 10%가 넘게 하락했는데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의 부 중에 약  7천억달러(700조원)가 단 이틀만에 날아간 것입니다. 


상품시세의 급격한 조정이 첫번째 긍정적 가정의 시니리오로 연결되려면 지금과 같은 불안한 경기회복의 조짐만으로는 부족하고, 상품시세 하락이 어느 정도 선에서 진정이 돼줘야 합니다. 오늘까지 이틀간 보여준 급격한 움직임이 연장된다면 위험성은 커집니다.


혹자는 금과 채권이라는 무위험자산에 쏠려있던 유동성이 주식으로 이동하는 대전환(great rotation) 가능성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자산의 로테이션이라는 건 서로 다른 방향성을 보였던 자산 간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상품, 채권, 주식이 모두 풍부한 유동성 상황에서 같이 손잡고 달려왔는데 본드 버블 상품 버블이 왜 주식 버블로 옮겨가야 하나요. 


이 글 쓰는 사이 금 -9% 은 -12%로 하락폭이 확대되었습니다. 조정이 너무 과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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