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산업의 변화, 자본의 논리, 정보의 불평등

신문은 원래 광고지면을 판매하는 미디어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에 파헤쳐지면서 신문은 이제 미디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했고, 플랫폼소유자가 아닌 컨텐츠 프로바이더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의 미디어 영향력은 전통언론을 다 합쳐도 이제 네이버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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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은, 신문사는 새로운 비즈니스에 적응해가고 있다. 과거의 영광에 비할바 아니지만, 뉴욕타임즈나 파이낸셜타임즈처럼 차별화된 컨텐츠 생산능력을 갖춘 신문사는 온라인 유료구독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투자여력이 뒷받침되는 신문사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못한 신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거대자본에 예속될 수 밖에 없다. 


최근 3일 사이 워싱턴포스트와 보스턴글로브가 각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보스턴레드삭스 구단주 존 헨리에게 (과거 기준으로 보면) 헐값에 팔렸다. 컨텐츠 유료화가 가능한 한정된 신문사가 아닌, 나머지 그저그런 신문사들의 존재가치는 이제 오직 자본가의 사업 포트폴리오 관점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대형 신문사들이 종편에 수천억원을 투자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대세가 기운 플랫폼 강화에 쏟아부은 엄청난 자본을, 기자들과 컨텐츠 인프라에 투자해 컨텐츠 유료화를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TV채널의 가치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수십년간 축적된 자본이 믿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탕진되면서, 신문사에 기대하는 컨텐츠의 질적 발전이 정체된 것은 분명해보인다. 


"썰전"같은 엔터테인먼트의 다양화를 원하는 대중의 욕구도 있겠지만, 한국 신문이 뉴욕타임즈나 산께이의 분석기사 같은 높은 수준의 컨텐츠를 공급해주길 바라는 공공의 필요성도 있다. 국가 규모나 인구수 대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현실에서, 국내 유력 언론사들이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는 컨텐츠의 깊이를 도외시하고 이목을 잡아끄는 예능프로그램에 투자하는게 과연 사회적으로 이로운 것일까.


앞으로, 신문산업이 해체되고 자본에 예속되면서 "쓸만한" 독립계 신문사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나마 살아남은 신문사들은 컨텐츠를 유료로 제공할 것이다. 몇 년전만해도 뉴욕타임즈나 파이낸셜타임즈의 깊이있는 기사들을 무료로 마음껏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월간 2-3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컨텐츠 발전을 위해서는 유익한 일이고 필요한 사람이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유료 컨텐츠를 구매하지 않는 사람도 다른 무료 컨텐츠로 시간을 보내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료 컨텐츠들은 과거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산되었거나 아니면 자본의 구미에 맞게 가공됐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좋은 컨텐츠 - 궁극적으로 양질의 정보는 과거보다 훨씬 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게 될 것이다. 모든 정보를 평등하게 만든다던 인터넷의 발전이 오히려 정보의 불평등과 집중을 야기하는 아이러니로 연결되는 것이다.


신문 산업의 변화는 전반적인 컨텐츠 품질의 열화와 정보의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퇴행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 전통언론의 대응이라는 것은 축적된 자본을 구식 플랫폼에 탕진하거나, 아니면 서로 작당해서 네이버를 '까는' 것이다. 물론, 이들과 유착된 정부도 '공공서비스로서 언론'의 가치와 희소함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번 부자가 기부차원에서 언론재단을 만들어 양질의 컨텐츠를 무료로 공급하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어떤 면에서 심각한 퇴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변화는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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