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베팅, 그리고 닛산 게이레츠

 '재벌'이라는 단어는 한국 기업집단의 특성을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옥스포드 사전에도 등록돼 있다. 한국기업에 대한 외신기사에서도 종종 "conglomerate"이 아닌 "chaebol"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재벌'이 한국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그 단어와 개념은 2차대전 이전 일본경제에서 유래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룬 일본 경제에는 주요 기간산업과 금융업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집단이 출현했다. 이런 기업집단들은 특정 가문에 의해 지배되고, 수많은 계열사들은 수직적 구조하에 놓여져 있었다. 2차대전 직전까지 일본 경제를 주도한 이러한 거대 기업집단을 자이바츠(Zaibatsu, 財閥)라고 부르는데, 자이바츠를 우리말로 읽으면 바로 그 '재벌'이다.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4대 자이바츠(미쯔이/스미토모/미쯔비시/야수다)를 비롯해 13개 신흥 자이바츠까지, 이들 거대 기업집단들은 주요 기간산업/방위산업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 및 제국군대와 연계되어 식민지 정책과 전쟁에도 직접 개입했다. 1945년 종전 이후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장군의 미 군정은,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확대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재산업화를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서구식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자이바츠를 지배하던 주요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고 자이바츠를 해체시켰다. 하지만, 기업간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일본 산업의 뿌리깊은 전통을 송두리째 뒤바꿀 순 없었고 주요 자이바츠들은 50-60년대 고성장기에 새로운 형태의 기업집단으로 진화했다. 과거처럼 기업집단을 지배하던 재벌가문들은 사라졌지만, 같은 자이바츠에 있었던 기업들은 상호 지분 보유를 통해 협력을 강화했고, 특히 금융과 제조업의 결합을 통해 세계 최고 제조업 국가로 일어서는 일본경제를 주도했다. 재벌가문은 사라졌지만, 상호종속 형태를 유지한 전후 일본 기업집단을 게이레츠(Keiretsu,系列 - 계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재벌계열이라는 말도 쓰는데, 이는 일본의 자이바츠/게이레츠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Nissan)도 2차대전 이전에는 자이바츠였다. 아이카와 가문이 지배하는 닛산(일본산업주식회사)은 일본내 주요 광산을 소유한 신흥 재벌의 하나였다. 닛산 자이바츠는 전후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해체 이후 게이레츠로 진화되었다. 전후의 닛산 그룹은 부동산과 보험업을 바탕으로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성장했고, 도요타와 함께 자웅을 겨루던 닛산자동차는 전체 닛산 그룹의 여러 사업부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90년대 파산위기를 거쳐 프랑스 르노와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는 닛산자동차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도요타와 호각세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닛산과 중요한 차이를 갖고 있었다. 도요타 역시 게이레츠를 이루고 있었지만, 도요타 그룹은 자이바츠에서 나온 기업이 아니다. 문어발처럼 뻗어있는 사업 구조의 복잡성 측면에서 도요타는 닛산 그룹보다 그 정도가 덜했고, 부동산/금융 중심의 닛산 그룹과 달리 자동차제조업이 그룹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성장률이 둔화된 일본 경제는 무리한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버블을 경험했고, 1990년을 기점으로 버블 붕괴 국면으로 진입했다. 지가하락과 이에 따른 부동산 개발사업의 좌초 그리고 연쇄적인 금융기업의 부실화는 이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닛산 그룹에 치명적이었다. 상호 보완/종속을 핵심으로하는 게이레츠는 호황기에는 막강한 투자능력을 보여주지만 불황기에는 동반 추락으로 연결된다. 부동산 버블붕괴는 강력한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닛산자동차 부실화로 연결되었고, 결국 외국기업과의 자본제휴를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버블붕괴 이전까지만해도 닛산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을 벌였던 도요타자동차는 안정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버블붕괴 와중에서도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는 반전을 연출했다.


 오늘 있었던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에서 현대차 그룹은 감정가의 3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입찰가로 그룹 사옥을 지을 땅을 확보했다. 평당 4억4천만원, 10조원이 넘는 입찰금액은 이후 막대한 기부채납과 10조원이 넘을 개발비용 등 굳이 추가적인 지출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엄청난 숫자였다. 입찰금액이 알려진 후 현대차 그룹의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고 반나절만에 8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소멸됐다. 현대차그룹에게 있어 삼성동 2만4천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이를 통해 어떤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나, 입찰에서 경쟁한 삼성전자가 이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써냈다는 것과 부동산 침체기에 감정가 대비 3배가 넘는 가격을 써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들이다. 오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워낙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무조건적인' 인수를 지시했다고 한다. 


 굳이 회장님의 의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기업이 10조원이 넘는 금액을 '땅'사는데 쓰는 일은 재벌기업이라는 지배구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 틀림없다. 일년치 영업이익에 맞먹는 자산 매입의 책임을 견뎌내는 것은 오너 회장님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현대차그룹의 10조 베팅은 '내 회사다. 무조건 해라'라고 최종 결재판에 사인할 수 있는 재벌총수의 존재와 거대기업의 의사결정구조가 갖는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며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이 두번째로 큰 한국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국민연금이 소유한 현대차/기아차/모비스의 지분율이 7-8%에 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오늘의 주가 하락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은퇴자산이 반나절 사이 6천억원 이상 소실됐다. 굳이 현대차가 얼마나 큰 회사인지 떠올리지 않아도 10조원의 베팅은 정몽구 회장이 후회할 일을 했냐 안했냐의 문제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파급력을 생각할때 오늘의 사건은 비싼 입찰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거대 재벌이라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해서 사회적인 담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닛산자동차의 모 그룹 닛산 게이레츠가 무리한 부동산 투자로 부실화되지 않았으면 일본 자동차 업계의 순위가 지금과 다를 수도 있었다. 기술력과 생산규모가 비슷했던 닛산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의 운명이 단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극과극으로 갈렸던 것을 떠올리면 기업 지배구조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느낄 수 있다. 닛산이 르노와 얼라이언스를 맺은 후 부임한 45세의 외국인 CEO 카를로스 곤은 그 이듬해 "게이레츠 킬러"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카를로스 곤이 기업 정상화의 방법으로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닛산자동차와 닛산 게이레츠 간의 구태의연한 관계를 끊는 것이었고 그 결과 닛산은 부활에 성공했다. 


 기업의 투자의사결정이 불러올 결과는 오직 시간이 흐른 뒤에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경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업이 일반 상식을 뒤엎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행하는 과정이 합리적인 검토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짚고 넘어가야할 일이다.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지분은 5%에 불과하다. 계열사 지분까지 해봐야 26%에 불과하다. 현대차 이사회는 정몽구 회장 이외의 74%의 주주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다. 베팅의 결과가 주주와 국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차그룹의 오늘 일을 보면서 닛산 게이레츠를 떠올리게 된 것이 쓸데없는 기우이길 한국 사람으로서 간절하게 바란다. 아니, 기우도 아닌 떠들기 좋아하는 무명잡배의 헛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아니더라도, 안그래도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90년대의 일본을 닮아가는 이 나라에서 닛산 게이레츠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이라는 지배구조를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순전한 '그들만의 문제'라는 것은 없다. 가십의 대상이 아닌 분명 '우리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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