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기에 대하여

가상화폐가 현대의 화폐체제(Fiat Currency)를 대체할 것인가? 가상화폐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금이나 달러의 위상을 대체하는 '디지털 골드(Digital Gold)'가 될 것인가?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이 될 것인가?


사실 이런 질문들에 큰 의미는 없다. 인간 사회의 불완전한 기반과 변화의 역동성은 미래예측을 가치관과 신념의 문제로 만든다. 이 질문들에 자기가 믿는대로 답하면, 가상화폐가 곧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주장과 가상화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라는 주장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것이 얼마나 논리정연하냐는 노력과 기법의 문제이지 진위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다만, 맹아적 기술로서 블록체인이 어디까지 발전해있고,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화폐가 현재 어느 정도까지 기능하고 있는지는 '블록체인의 미래'라는 선언적인 명제와는 달리 사실 그대로 판단할 수 있는 "현실문제"이다. 또한, 최근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현실적인 가상화폐의 기능에 기반해 있는가는 합리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분산원장으로 기록하고, 작업증명을 통해 중앙관리자 없이 지속적 보안 유지가 가능하다는 2008년 비트코인의 백서(whitepaper)는 대단한 통찰이며 위대한 발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방식은 대규모 컴퓨터 자원투입과 지루한 합의 과정이 있어야만 구현 가능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작업 처리 용량은 초당 7건의 거래로 제한돼 있다. (실제로는 초당 2-5건의 정도의 거래가 처리되고 있다.) 이런 느린 처리 속도와 대규모 컴퓨터 자원의 필요로 인해, 비트코인의 거래가 늘수록 거래 비용도 비례하여 늘어나게 된다. 최근 비트코인의 거래 처리에 필요한 건당 비용은 USD 27~40 까지 상승했다. 천원을 보내던 천만원을 보내던 5만원 가까운 수수료가 붙는 상황이다. 


소위 '하드포크'라고 부르는 코드변경을 통해 비트코인의 블록크기를 키워 처리속도를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방식상 이러한 방향의 하드포크는 필연적으로 애초 목표했던 보안성이나 탈중앙화의 가치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흔히 "블록체인 2.0"으로 부르는 이더리움은 거래 처리에 있어서 비트코인의 블록크기 제한과 비슷한 '블록가스제한'이 하드포크없이도 유동적으로 변화될 수 있게 설계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Mining)의 과점화 문제와 보안 이슈로 인해 거래량 폭증 상황에서도 '블록 가스 제한'을 쉽게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로인해 이더리움의 현재 처리능력은 초당 15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실제로는 초당 10-12건 정도가 현재 처리되고 있다.) 


이더리움이 블록체인 2.0으로 불리는 것은, '스마트 계약'의 개념을 도입하여 이더리움 블록체인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이 되어 무한한 응용범위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화폐를 주고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등기소 역할을 해주는 공공의 인프라를 만든다는 비젼은 얼마나 대단한가. 스마트계약과 분산화앱(dApp) 등 이더리움이 구현한 개념은 비트코인에 이은 또 하나의 대단한 혁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더리움이 화폐를 넘어 글로벌 스마트계약 플랫폼이 되려면 처리속도와 용량이 지금보다 꽤 많이 늘어나야 한다. 금전적 거래에 비금전적 거래까지 합쳐진다면 초당 15건의 거래처리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상반기 이더리움에 기반한 신생 가상화폐들의 자금모집으로 이더리움 거래량이 폭증할 때가 있었는데 이럴 때 연거푸 이더리움의 거래가 하루종일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해 거래 처리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참고로, 비자(VISA)는 초당 2,000건~3,000건의 거래를 처리하고 있고, 비자의 발표에 따르면 VisaNet의 처리용량은 초당 56,000건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블록체인이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 처리를 분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분산화를 시키는 것이 중앙화하는 것만큼이나 효율적이라는 것까지 증명해야 한다. 최소한 Visa의 현행 거래 처리 수준인 초당 2~3천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 가능성은 열려있다. 블록체인의 거래 처리능력 한계는 개발자들이 최초부터 인식했던 문제이고 수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어 왔다. 최초에 코드를 창안한 '사토시'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비트코인과 달리 카리스마있는 개발자들이 리더쉽을 갖추고 기능개선을 주도하는 이더리움은, 작업증명을 지분증명(PoS)방식으로 전환하고 '샤딩(Sharding)'이라는 기술로 데이터베이스를 쪼개는 등 거래 처리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노드가 같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채굴능력을 경쟁시키는 기존의 작업증명이 비트코인을 통해 안전성이 어느 정도 증명된 방식인 데에 반해, 지분증명이나 샤딩, 오프-체인(off-chain transaction) 등 새로운 기술은 아직 현실의 복잡한 상황 속에 검증된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현재 새로운 기술을 완전히 적용한 코드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며, 곧 이런 코드가 나온다고 해도 실제 구현됐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더리움 재단에서 지분증명 알고리즘이나 샤딩 적용 계획을 공식화한지 꽤 오래임에도 여전히 실제 적용되지 못하는 이유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외에도 수많은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들이 있고, 이들 중에는 기존 블록체인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들도 있다. 비트쉐어(Bitshare), 스팀(Steem)같은 가상화폐는 위임자격증명(DPoS)이라는 방식으로 비약적인 처리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리플(Ripple)은 채굴 프로세스가 없는 블록체인을 디자인하였고 아이오타(IOTA)는 아예 거래비용을 없애서 블록체인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DPoS는 처리속도는 높일 수 있지만 블록체인 본연의 매력인 탈중앙화와 영속적인 안전성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있다. 리플은 사실상 중앙화된 블록체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아이오타는 궁극의 블록체인처럼 보이는 화려한 백서와는 달리 개발속도가 느리고 실제 거래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라는 지적도 존재하고 있다. 


알고리즘 개선과는 별도로,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네트워트 노드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 원천적으로 처리 속도의 한계를 감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경제활동에 블록체인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미리 정해진 참여자들만 노드로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프라이빗 블록체인도 아직까지는 상용화되기에는 속도가 느리다. IBM이 주도하는 오픈소스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인 하이퍼렛저(Hyperledger)의 처리속도는 초당 1,000건으로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훨씬 더 빠르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앙화된 네트웍의 처리 속도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나마 이는 이론상의 수치이고 얼마전에 한국의 코스콤에서 하이퍼렛저 기반으로 블록체인을 시연했는데 실제로는 초당 60건 정도의 효율이 나왔다고 한다. 


2008년 이후 시작된 블록체인 실험으로 탈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가 보안성을 유지한채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음이 입증됐음은 분명하다. 또 블록체인의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것이 최근 블록체인이 전세계에서 각광받게 된 이유이다. 그러나, 실제로 블록체인이 현실의 중앙화된 네트웍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다. 블록체인, 가상화폐는 모두 전도유망하지만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초기단계의 기술적 시도인 것이다.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언제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무엇이 돌파구가 될지, 어떤 집단이 주도권을 쥘지,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현재로선 짐작하기 섣부르다. 그런 초기 단계 기술에 사회는 별다른 이해 없이, 앞으로의 계획만 화려하고 실제로는 구현되지 않고 구연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상당수의 알트코인들처럼, 앞뒤 재지않고 미래의 그림에만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더리움 핵심 개발자이자 지분증명(PoS) 방식의 새로운 합의 알고리즘을 개발중인 Vlad Zamfir가 올해 3월에 "이더리움은 안전하지도 확장가능하지도 않다. 아직 실험적인 초기 기술이다. 중요한 개발 프로젝트라면 가급적 이더리움에 의존해선 안된다!"라고 트윗하고, 이렇게 쓴 이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당시, 이더리움이 막 급등하기 시작한 때였는데, Zamfir는 이더리움 가격 급등을 과도한 낙관(Euphoria)라고 표현하며 (현재 당시 가격보다 15배 정도 올라있다는 걸 생각하면 섣부른 표현이긴 했다...) 투기적인 가격 움직임과는 달리 실제 이더리움의 개발이 쉽지 않음을 표현했다. 본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Blockchains are not toys. They aren’t get rich quick schemes. They aren’t a shiny tool for automating your business processes. They are powerful technology that have the potential to do unspeakable harm. But they can also provide the basis for solutions to serious global problems.


When I shit on your parade, it’s not because I’m not excited about the technology. It’s not because I don’t care about all the work we’re doing. It’s not because I’m not optimistic about the future of Ethereum. It’s because it really bothers me to perceive that you are engaged in a circlejerk while I feel like I have the world on my shoulders (which btw includes your circlejerk).


블록체인은 장난감이 아니다. 블록체인은 빨리 부자가 되는 수단도 아니다. 당신의 비즈니스를 자동화하는 멋진 도구도 아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강력한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로 심각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당신들의 잔치를 보면서 내가 나쁜 소리를 한건, 내가 이 기술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개발작업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내가 이더리움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내가 지구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동안 당신들이 '집단 마스터베이션'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출처 : medium)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하루에 몇 조원씩 거래를 처리하고 있는 마당에 가상화폐가 느리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다. 거래소에서 일어나는 가상화폐 거래는 거래소의 서버 안에서 일어나는 거래일 뿐 해당 가상화폐가 속한 블록체인 상에서 일어나는 거래는 아니다. 탈중앙화를 주장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거래의 대부분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중앙화된 거래소 서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었다는데, 정작 그 자동차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즐기면서 하늘은 물론 우주까지 날아봤다고 생각하는 형국이랄까.


거래소가 가상화폐를 블록체인이라는 들판이 아닌 거래소서버라는 좁은 우리 안에 가두면서 블록체인의 발전 자체를 가로막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신규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개발자들 입장에서 실제 구현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는 거래소에 재빨리 등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큰 이윤을 거둘 수 있다면 본능적으로 어느 분야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까? 오늘, 시가총액 180억달러로 규모면에서 세계 5대 가상화폐인 라이트코인(Litecoin)의 창립자가 자신이 보유한 모든 라이트코인을 매도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해상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매도했다는데 자신이 만든 코인을 모두 팔아 더 이상 코인의 가치에 자신이 영향받지 않게 된 것이 왜 이해상충의 해결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정도 벌었으면 됐다'라고 생각한 것일까. 


가상화폐는 '디지털 골드'이고 화폐보다는 자산으로서의 위상이 더 강하기 때문에 거래 처리 능력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폐의 기능이 없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자산이라고 해도 그 기능적 측면이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산은 현금창출능력이라는 자산의 고유가치와, 자산가격의 변동성에서 오는 투자대상으로서의 가치라는 2가지의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전통자산들처럼 그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배당, 이자, 임대료 등 어떤 방식으로든 부가적인 경제적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한 가지이고, 자산의 가격이 계속 올라가면서 투기적인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것이 다른 한 가지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서 삼성전자가 주는 배당에만 관심이 있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 짧게는 내일, 길게는 1-2년 뒤에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어떤 식으로든 주식을 사고파는데 반드시 수반된다. 그러나, 자산가격의 변동성이 자산의 중요한 매력이라 해도, 자산의 매력이 오직 자산의 변동성에 의해서만 설명된다면 과연 그것을 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강원랜드 슬롯머신에 넣는 칩도 변동성 측면에서는 일종의 자산이지만, 카지노에서 칩을 사는 행위는 도박이라고 부르지 투자는 커녕 투기라고도 불러주지 않는다. 


"금"은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상고시대부터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었다. 산업적으로는 전도재료로서, 촉매재료로서 광범위한 수요가 있다. 물론, 현재 금의 가격이 사치품으로서 그리고 산업소재로서의 내재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삼성전자 주가가 매일 출렁이긴 하지만 그 가격이 삼성전자의 이익창출능력과 반도체/스마트폰의 수요공급 상황 안에서 어느 정도 통제되는 것처럼 금도 사치품과 산업소재로서의 내재가치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달러 등 기축통화의 공급 상황에 따라 논리적인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이런 것이 자산이다. 실물과의 연계성없이 단지 공급이 제한된다고 해서 자산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가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분산화된 P2P네트웍으로 난공불락의 데이터베이스를 구현하기 때문이지 빗썸이나 코인원 같은 거래소가 우리의 자산을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클라우드 서버에 안전하게 보관해줘서는 아니다. 가상화폐의 내재가치는 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해주면서 기존 중앙화된 서버에 버금갈 정도로 거래를 효율적으로 성사시켜주고 또 대량의 스마트계약을 처리해줄 능력을 가질 때  존재한다. 이러한 능력이 아직 개념의 구현만 됐을 뿐 실제 생활에 사용될 정도로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실험중에 있다면 가상화폐의 내재가치 역시 실험적인 것이다. 유행에 휩쓸려 가격이 오르내릴 때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가격변동을 멈춰줄 내재가치가 없다면, 다시 말해 자산의 2가지 측면 중 내재가치는 미미하고 변동성만 존재한다면  '내일도 가격이 오를거야'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 자산으로의 매력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자산가격에 왜 '버블'이라는 표현을 쓸까? 부풀어 오른 비누방울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터져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자산가격에 버블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손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서이다. 버블은 자산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기 쉬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어의 의미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가격이 높다고 버블은 아니고, 가격이 높다고 버블이 꺼지지 않는다. 버블인 상태에서도 자산가격은 계속해서 오를 수 있지만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는 충격이 왔을 때 속절없이 하락하게 된다. 내재가치의 뒷받침없이 가격이 과도하게 올라서 가격이 하락을 멈춰줄 근거가 없을 때가 버블이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가 기술적인 한계로 아직까지 고유의 현금창출능력같은 고유의 내자가치를 갖추지 못하고, 본래의 존재목적과는 반대인 중앙화된 거래소 안에서의 변동성으로만 가치를 갖는다면 가상화폐 가격의 현재 상태를 버블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번역에 참여했던 '붐버스톨로지'라는 책에서 저자는 역사상의 금융버블을 분석하면서 버블을 일으키는 5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1) 미시경제적 요인 : 가격 상승이 더 높은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재귀적인 현상

(2) 거시경제적 요인 :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레버리지

(3) 정치적 요인 : 정부 개입에 의한 가격교란

(4) 심리적 요인 :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편향

(5) 생물학적 요인 : 전염과 창발[각주:1]과 같은 집단 현상


가상화폐의 투기적 버블은 상기 5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춘 전형적인 버블이다. 과잉유동성이 풀려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올라가는 자산인플레이션 시대에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자산이 나타났다(거시경제적 요인). 여기에 올해 초 일본에서 가상화폐를 공식 허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가상화폐가 화폐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등장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중국에서의 가상화폐 거래 금지는 중국 가상화폐의 국내 유입을 촉발하여 오히려 국내 거래를 더 활성화시키게 되었다. 디플레이션과 싸워야한 일본과 자본유출과 싸워야 하는 중국 사이에서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정치적 요인). 가상화폐의 가격이 오를 수록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투자자가 몰려 가격이 더 오르는 현상이 가을에 나타났다. (미시경제적 요인) 이러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가즈아'같은 말로 대변되는 심리적 편향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대중적인 참여가 나타나다 보니 나만 소외되어 좋은 투자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FOMO, Fear of missing out)이 전염과 창발로 나타났다. 


가상화폐 가격은 현재의 블록체인 발전 속도로는 합리화시킬 수 없는 버블 상태에 있다. 거래소가 의심스러운 해킹을 당해도, 하드포크를 가장한 사기 사건이 발생해도, 창립자가 보유한 코인을 다 팔아도, 백서만 꾸며놓고 ICO로 모은 자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등장해도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지만, 향후 대단한 후유증을 남길 투기적 버블이 조성되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식이나 부동산 버블과 달리 금융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버블 붕괴가 연쇄적인 효과를 만들어내진 않겠지만, 스마트폰과 모바일네트워크에 기반한 거래소의 등장으로 사회적 악영향은 과거의 주식이나 부동산 버블보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예전에 동네 구석구석으로 침입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환금성있는 슬롯머신 오락실인 "바다이야기"와 다를바가 없다. 단 시간에 몇십프로씩 가격이 움직이는 거래가 365일 24시간 끊이지않고, 스마트폰에서 언제나 접근가능한 신종 바다이야기가 미치는 사회적 해악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초단위 분단위로 돈이 현기증 나게 오락가락하는데 그것이 손 안에서 24시간 진행된다면 그 유혹과 중독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가상화폐 거래가 대중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파고드는 것의 사회적 비용은 감히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90년대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버블이 뜨겁고 오래 지속되었다. 수많은 벤처가 (그리고 기존 전통산업의 기업들이 업태를 바꾸어)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엄청난 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새로운 비즈니스의 상당수는 당시의 전화선 모뎀 위주의 네트웍으로 구현 불가능한 것이었고, 또 상당수는 사업진행 능력과 의지가 없는 프로젝트들이었다. 99년 전세계적인 닷컴 열풍이 불고 나서 특별한 계기없이 2000년 닷컴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고 IT버블 붕괴가 왔다. IT버블 붕괴의 후유증으로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은 2000년대 초중반 제대로된 투자를 받지 못했고 2000년 이후 인터넷 사용량이 본격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존, 구글, 라쿠텐, 알리바바, 네이버 같은 소수 기업이 과실을 독점하고 각 국가의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KT의 주가는 1999년 12월 199,000원을 기록한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주가하락을 경험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 CISCO도 2000년 3월 기록한 79불이 최고가이고 최근 주가는 40불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터넷 도입 초기 당시에는 인프라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을 위해서는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인프라가 데이터 사용량에 관계없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어야만 했다. 30대 이상의 연령대라면 01410으로 전화를 거는 56k모뎀을 써봤을 것이다. 지금의 블록체인은 모뎀과 같다. 블록체인이 지속적인 보안성을 갖는 분산 데이터베이스의 인프라가 되고 블록체인 인프라를 바탕으로 미래를 바꿀 비즈니스 모델들이 수없이 개화하려면 인프라 이용비용이 저렴해져야 한다. 전세계 곳곳에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설치된 수천개의 ASIC/GPU로 구성된 채굴장들은 90년대 77개의 인공위성을 쏘아서 전세계를 커버하는 이동통신망을 만들겠다는 이리듐 계획을 연상시킨다. 


제2의 인터넷이라는 블록체인이 원조 인터넷의 성장 궤적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다. 현재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퍼블릭이던 프라이빗이든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는 구현되기 어려운 장미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에 반해 가상화폐 투기 열풍은 99년 닷컴열풍과 같다. 버블의 붕괴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을 갑자기 떨어트릴 것이고 세상을 바꿀 멋진 블록체인 프로젝트조차도 자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결국 제2의 인터넷 - 블록체인조차도 소수의 참여자들에 의해 장악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을 맞출 뿐인가. 




  1. *창발(Emergence) : 개별 개체의 행동이 집단 전체의 일치된 행동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