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기반 성장산업으로서의 농업

(이 글은 지난주 주간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을 다소 다듬은 것입니다.)


 최근 글로벌 바나나 산업이 비상이다. 농장 전체의 바나나 나무를 순식간에 시들게 하는 ‘파나마병’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바나나 수요의 2/3을 공급하는 남미지역까지 이 병이 전염된다면 바나나 시장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사실 바나나 멸종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인데, 50년 전만해도 캐번디시 품종보다 훨씬 당도가 높은 ‘그로미셸’이라는 품종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파나마병으로 그로미셸이 멸종되면서 우리는 부모세대들이 어렸을 적에 맛보던 바나나 보단 훨씬 맛없는 바나나를 먹고 있다. 


 최근 우리는 지카바이러스나 메르스 같은 신종 전염병이 전세계로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신종 질병이 쉽게 퍼지는 것은 무역과 소통이 세계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어 지구촌 전체가 ‘리얼타임’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성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신종 전염병 뿐만 아니라 동식물 질병까지도 옮겨서 먹거리의 공급을 교란하고 있다. 인간의 전염병은 우리가 쉽게 인지하고 신속히 대응하기에 어느 정도 통제에 성공하고 있지만, 동식물 질병의 경우 속수무책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는 바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에는 세계 최대 양식 새우 생산국인 태국에 EMS라는 신종 전염병이 돌아 새우 생산량이 40% 급감하고, 이로 인해 전세계 새우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런 먹거리의 위기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지구촌의 초연결성 뿐만 아니라, 현대의 농수산업이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단일 품종을 유사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하거나 양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생물 다양성이 훼손된 농수산업의 환경은 전염병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도 취약하다. 매 계절 전세계 곳곳에서 폭설과 폭우로 인명과 재난 피해가 발생하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데, 그와 똑같은 빈도로 농수산업의 생산량 역시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우리가 50년전 바나나 맛을 잃어버렸듯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맛들을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새로운 전염병 외에 농수산업의 생산성 위기를 불러올 위험요인은 인간 사회 안에도 있다. 사실 이게 좀 더 근본적인 위험일 수도 있다. 통계청의 2015년 농림어업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37.8%가 70대 이상이라고 한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폐해가 가장 심한 영역이 농업이다. 고령화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농업 인구 자체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병충해와 기후변화로 생산 환경이 나빠지고 상황에서 농업인구 고령화는 치명적일 수 있다. 혹시 독자분들이 이런 이야기들이 일상생활하고는 동떨어진 것들이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바나나와 새우는 여전히 우리 식탁에 올라오고 있고 농업인구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마트의 판매대는 여전히 채소들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부지불식 간에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저물가가 만성화돼있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도 답보상태에 있다. 하지만 물가지수 세부 항목 중에 식료품 지수의 상승은 최근 들어 매우 가파르다. 




 5월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마늘은 56%, 양배추는 63%, 무 가격은 57% 올랐다. 단순히 동절기 한파의 일시적 영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식료품 물가는 최근 1-2년 사이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전염병, 기후변화, 고령화 등으로 인한 농업의 생산성 위기를 본격적으로 마주하는 그 시작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다. 체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농업의 생산성 위기는 역으로 기술기반 농업을 성장산업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앞서 새우 양식을 위기로 몰고간 바이러스는 새우를 양식과정에서 외부 환경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내륙 공장형 양식 기술의 도입을 확산시키고 있다. 바다가 아닌 육지의 인공시설에서 세균 접촉과 항생제 투입 없이 새우를 키우는 것이다. 이런 양식법은 많은 투자와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절박한 상황 변화가 투자와 기술개발을 촉진시키고 있다. 일본이 선도하고 있는 식물공장은 반도체 공장 수준의 클린룸에서 병충해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어떠한 농약처리도 없이 양질의 농작물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물론, 대규모 투자로 식물공장의 비용구조는 일반적인 노지 재배에 비해 턱없이 비쌌지만, 기존 방식의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고 식물공장 기술이 발전되면서 점점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이상적인 식물공장이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리온실 등 기계화/산업화된 농업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최근 미국 MIT Media Lab에서는 개인화된 '푸드컴퓨터'의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전자레인지 만한 박스에 식물을 넣어두고, 해당 식물에 맞는 최적의 재배환경 데이터가 담긴 자료를 서버에서 다운로드하면 박스 안에서 식물이 자동으로 자라나는 개념이다. 푸드컴퓨터는 "거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품종"을 개발하자는 기존의 생물공학 기반의 농업과학이 아닌, "식물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주자"라는 기계공학/전자공학/정보공학 기반의 농업과학이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농업에서 공업으로, 공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발전의 축이 옮아가는 전통적인 경제성장 패턴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농업을 1차산업으로 분류하고 농업에서 성장을 찾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 상장기업에도 농업관련 기업은 드물고 그나마 최근 수요가 커지고 있는 기술기반 농업을 선도할 수 있는 업체는 찾아보기 극히 어렵다. 이렇게 그동안 농업을 주목하지 않았기에, 최근 농업생산성 위기와 그로인한 새로운 성장과 투자기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질병과 혹독한 환경은 항구적인 변화이고 인구 고령화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인류적 과제이다. 농업을 둘러싼 환경과 그에 대한 대응은 거대한 변화일 수 밖에 없다. 지금시점에서 필자에게 누군가 장기 성장 산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화장품이나 헬스케어에 앞서서 기술기반 농업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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