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와 버니 샌더스

오늘(2월1일) 미국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양당의 경선이 시작된다. 아이오와주 당원대회는 초반 판세의 방향타이자, 과거 대선에서 늘 이변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에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는 선거 후보자들에게 글로벌한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이 글은 오늘밤 아이오와 당원대회를 앞두고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가 이겨줬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쓴다.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해가 바뀌고, 전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MSCI 전세계 주가지수는 1월 중순에 연초대비 10%에 달하는 낙폭을 보였다. 세계 곳곳에서 패닉셀링이 나타났고 위기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갑작스레 위축된 시장 움직임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뒤늦게 등장하고,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은 '2008년 금융위기 상황과 똑같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1월의 시장폭락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글로벌 경제가 무언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게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선진국들은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을 선택했다. 새로운 통화정책은 단지 형식상으로 '비전통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규모에 있어서 '천문학적'이고 집행에 있어서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2009년 이후 모든 금융시장은 통화정책에 맞추어 완전히 재편되었다. 거의 모든 시장변동이 통화정책의 변동과 그에 대한 전망으로 설명되는 소위 '중앙은행 장세'가 지난 7년간 펼쳐졌다. 미국 주식시장은 중앙은행 장세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위 그래프는 2009년 초부터 2015년말까지 미국 주가지수 S&P500과 연방준비제도의 자산추이를 비교한 것이다. 양적완화로 찍어낸 돈은 연준 자산의 증가로 기록된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자산이 늘어난 만큼, 즉 중앙은행이 돈을 푼 만큼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미국 주식시장의 중기추세가 형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적완화는 시장금리조작과 과잉 유동성 조성을 통해, 위험자산가격을 상승시키고 경제주체들의 리스크감당을 활성화하여, 경기진작에 도움이 되는 부(wealth)의 효과와 투자확대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7년간 지속된 이런 정책은 매우 성공적으로 부동산/채권/주식의 가격을 올렸고, 미국 소비자들의 디레버리징에 성공하여 미국 경제를 안정 국면에 진입시켰다. 대단한 성과다. 미국 연준은 이를 자축하면서 2015년 12월 금리 인상을 발표해 '비전통적 통화정책'에서 '전통적 통화정책'으로의 회귀를 알렸다. 비상사태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니 세계 경제는 이를 반겨야 마땅한데, 오히려 극렬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반토막이 난 유가는 더욱더 가파르게 하락했고, 이머징 국가 위기론이 퍼지면서 중국 위안화와 홍콩달러 환율이 급변하여 위기감을 자극했고, 이내 전세계 주식시장이 녹아내렸다. 정부는 비전통에서 전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금융시장은 비전통적인 상태에 훨씬 더 익숙했던 것이다. 결국 국면 전환을 거부하는 시장 앞에서 중앙은행이 당황하며 꼬리를 내렸다. 시장의 공포 분위기는 유럽 중앙은행 ECB가 양적완화 확대를 암시하고, 일본 중앙은행이 사상첫 마이너스 금리를 발표하고, 미국 연준이 '세계 경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잠시 진정됐다. 그렇게 세계 경제는 다시 '비전통'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기왕 이렇게 된거 그냥 '비전통'을 '전통'으로 하면 어떨까. 그냥 주구장창 돈을 풀면 이번 1월 같은 혼돈은 안오지 않을까.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ECB에 이어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표방한 것은 일단 갈데까지 가보겠다는 신호이다. 어쩌면 우리 세대에서는 양적완화라는게 영원히 안끝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박카스나 레드불 같은 것이다. 계속 타우린을 주입할 수도 있지만, 아직 우린 그 부작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벌써 간이 너무 부워서 쓰러질 지경인지도 모른다. 공포스러운 것은 타우린의 효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부작용의 기미도 보인다는 것이다. 


경제학에는 MV=PY라는 공식이 있다. 

M은 경제내의 통화량을, V는 통화가 경제 내에서 돌아가는 속도를, 그리고 P는 물가,Y는 생산량을 지칭한다. 

그래서 이 공식의 의미는 통화량과 통화유통속도가 물가수준과 생산량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공식은 오래전에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M, V, P, Y라는 변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경제 상황에 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념적으로는 이 공식이 의미가 있다. 통화유통속도인 V가 일정하다고 가정한다면, 돈(M)을 풀었을때 물가(P)가 오르던 생산(Y)이 늘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푼 것은, 디플레 위협에 처한 경제의 물가상승률이 회복되고, 생산이 다시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다. 결국 양적완화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라는 것이 MV=PY라는 개념적 공식의 범주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돈=M을 늘리는 효과는 유통속도=V에 의해서 결정된다. 만약, 돈의 유통속도가 줄어든다면, 돈을 풀어도 물가상승이나 생산진작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미국 연준에서 집계하는 V의 추이를 보자. 



60년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정 범주에 있던 통화유통속도는 90년대말 치솟았다가 이후 지속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양적완화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급전직하하고 있다. V가 떨어지면 M을 늘려도 P나 Y가 더디게 증가한다. 다시 말해 통화정책의 실물 경제 진작 효과가 둔화된다는 것이다. 박카스를 마셔도 졸립다. 지금 막 양적완화를 진행중인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으면서 환율전쟁 이외의 통화정책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모두 '더 쎈 정책'으로 대응중이나 자신감을 얻어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은 임시방편이다. 경기 사이클을 미세조정하는 안정장치이지 노화되는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근원적 대책이 아니다. 더군다나 통화정책에는 내재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다. 지난 7년간 경험했듯이, 통화정책은 부동산이나 주가와 같은 자산가격을 조절하는 데에는 '직빵'이지만,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간접적인 작용을 한다. 사회의 모든 사람이 주택과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자산가격 상승 효과는 사회 전체의 소득으로 귀결되겠지만, 주택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의 소유가 상위계층에 집중돼 있으면 자산가격 부양은 자산 비소유 계층에게 마이너스(-) 부의 효과로 작용한다. 임대료가 올라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이 전월세 급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통화정책은 그 자체로 양극화 심화 정책이고, 자산 비소유자에 대한 수탈적 정책이다.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고 통화정책 효과가 체감되는 것도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더 가난해진 자산비소유 계층이 필수적인 소비를 제외하고는 검약하게 되면서 통화확장이 디플레를 가속화하는 아이러니다. 




위 그래프는 앞서 본 통화유통속도(붉은선)에 수치 하나를 덧 댄 것이다. 미국 가구의 중위소득(중산층의 평균 소득이라고 보면 되겠다)을 주택가격으로 나눈 수치이다. 파란색 선이 낮아진다는 것은 집값 상승에 비해 소득이 늘지 않아,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97년부터 미국의 중산층의 소득이 집값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파란색 선이 지속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거비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이런 트렌드 시작된 97년부터 바로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질소득 증가없는 자산가격 상승이 통화정책의 효과를 감소시킨다는 방증이다.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영속적인 대안은 아니다. 근원적으로 사회 구성원 전반의 실질 소득을 개선할 수 있는, 자산가격 보다는 '실물경제에 직빵'인 정책으로 축이 옮겨가야 한다.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다. 재정정책이다.  


통화정책은 돈을 하늘에서 뿌리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름표가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은 주워담으면 임자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뿌려지는 돈을 주워담으려면 자산을 들고 있어야 한다. 재정정책은 이와 달리 이름표가 있는 돈이다. 정부가 집행하는 돈에는 의료나 교육과 같은 꼬리표가 항상 붙어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는 돈을 받는 자격은 자산소유가 아니라 투표권과 투명한 정부를 갖고 있느냐다. 


하지만, 재정정책은 지난 7년간 거의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 금융위기 초기에는 폴 크루그먼이나 래리 서머스 같은 뉴케인지안 경제학자들이 무제한 재정확장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금융위기 직후 급한 상황에서는 통화와 재정 양면의 완화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소버린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금기시 되어 버렸다. 인플레 고취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도 정부재정에 대해선 보수적이다. (도저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박근혜 정부도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 균형재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정부부채 위기로 국채 발행과 적자 재정을 통한 재정확대가 불가능하면 증세 뿐이다. 하지만 증세는 더욱더 시도되지 못했다. 경기가 안좋은데 세금을 올리면 어쩌자는 것이냐라는 심플하고 강력한 논리가 관련된 모든 논의를 사전에 차단했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이미 희석되기 시작했고, 자산 비소유계층에 대한 수탈적 효과에서 나오는 부작용이 이미 긍정적 효과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대안적인 재정정책이 나와야 한다. 물론 재정적자와 국채발행의 한계, 재정정책에 극렬히 저항하는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은 넘어서기 대단히 힘든 허들이다. 이 허들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재정확장을 통해 부의 분배개선과 실질 소득 증대에 기반한 경기진작 효과를 얻으려면 정말 너무나너무나 복잡한 사회적 합의와 결단이 따라야 한다.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누가 그런 리스크를 함부로 감당하려 하겠는가. 누가 그런 험로를 가려 하겠는가. 그저 해오던대로 박카스를 두 배로 더 마시는 쪽이 끝도없는 합의과정을 거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길을 가겠다는 움직임이 이번 미국 대선에 있다. 


버니 샌더스는 흔히 말하는 미국 '언더독(Underdog)'의 상징이다. 언더독의 사전적 의미는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작은 약자"이다. 2015년초 대선판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급진적인 포퓰리스트로 잠깐 이슈나 만들다가 퇴장할 인물 취급을 받던 샌더스는 이제 대통령 당선을 바라보는 위치에까지 와 있다.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로 부르는 버니 샌더스는 (적어도 미국 기준으로는) 매우 급진적인 복지정책의 확대 필요성을 주장하고,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미국 자본주의 권력에 비판 공세를 퍼부으면서 자신을 차별화했다. 



공화당에서는 티파티(미국식 꼴보수)보다 더 꼴통 보수인 도널드 트럼프가 득세하고, 민주당에서는 좌파인 버니 샌더스가 치고 올라가는 것을 현상을 두고,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치성향의 양극화로 해석하는 경향도 많았다. 물론, 샌더스 돌풍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로 전이되는 글로벌한 문맥도 큰 작용을 했겠으나, 샌더스는 막장을 달리는 유럽 극우/극좌 정치인이나 공화당의 트럼프에 비해서는 훨씬 더 얌전한 선비에 가깝다. 인종주의나 계급논쟁 보다는 미국식 실용주의에 더 가깝다. 


그가 다소 획기적인 주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샌더스의 공약은 기본적으로 민주당의 정책 방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샌더스의 핵심 공약은 (1)오바마케어 확대 통한 전국민 의료보험, (2)고등교육기회의 평등화, (3)최저임금인상, (4)대규모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규제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이런 정책의 시행을 위해서 향후 10년간 물경 18조달러에 달하는 재정확대를 공약하고 있다. 원화로 "2경원"이 넘는다.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넘어 대선에 다가선다면 미국은 그간의 금기를 깨고 재정확장 기조로 전향하는 분수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재정확장으로 가는 그 험한 과정과 리스크를 미국이 떠안아주고 먼저 길을 열어준다면 교착상태에 빠져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주변국으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버니 샌더스 공약에 따른 미국 재정 확대 필요성




샌더스의 연설은 가슴을 뛰게 한다. 사회정의를 주창하는 그의 발언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한국에는 왜 이런 정치인이 없나 아쉬워하게 되고, 샌더스 돌풍의 이유가 십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의 비젼이 쉽게 구현될 것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오바마가 보여준 것처럼, 선거를 통해 권위를 제공받았다고 해서 나라를 밀어붙일 수 있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화하기에 샌더스처럼 단일 방향으로 모든 변화를 한꺼번에 이루겠다는 것은 위험하다. 엄청난 시행착오와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 국가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기적이지만 그런 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세계 경제가 갈 수 있는 길은 박카스 중독 -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연장 뿐이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의 끝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시시각각 조여오는데 세계는 사실 별다른 대책이 없다. 소로스의 경고처럼 2008년식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2월 1일 발표된 우리나라의 1월 수출 통계는 그야 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전방위적으로 악화되는 한국의 수출을 보면서 지난달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동안, 실물경제도 큰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소득재분배와 재정확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세팅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체제가 전환될 가능성이 전무하다. 어떤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감행하고 그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주체는 현재로선 미국 뿐이다. 혹시 그들 자신에겐 고통스러운 과정일수도 있겠지만, 인류사회의 대안을 테스트 해보려면 어쨌든 누군가는 그 부담을 감수해야 하고, 미국인들은 스스로 샌더스와 같은 언더독 출신의 변혁가를 중앙무대로 불러왔다. 샌더스가 당선돼서 미국이 재정확장 기조로 들어가는 것이 고착화된 경제체제에 큰 변화가 오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밤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버니 샌더스가 이기길 희망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