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컨텐츠의 산업화, 10년만에..

내가 대학생이 되었던 1999년. 순전히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친구집에 놀라간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친구는 ‘벅스뮤직’이라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짜로,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서 바로 컴퓨터에서 재생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친구는, 스트리밍 음악을 녹음해서 씨디로 구워서 씨디피에서 재생하는 고급 스킬까지 가르쳐 주었다. (1999년에는 아직 국내에 mp3플레이어가 유행하지 않았다. 32메가, 그러니까 8곡이 들어가는 mp3플레이어가 시장에 나와있었고, 꽤나 얼리어댑터적 기질을 갖고 있던 나조차도 CDP가 최고의 휴대용 음악감상 기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돼버렸지만, 내가 원하는 음악을 즉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디지털 컨텐츠라는 새로운 컨텐츠 소통 방식이 이제까지 전혀 없던 효용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 후로 10년간, 디지털 컨텐츠가 세상에 가져온 건 파괴적인 저작권 침해와 끝도없는 소송이었다. 무료로 스트리밍을 제공하던 벅스뮤직은 당장 저작원 협회로부터 소송에 시달렸다. 무료로 음악을 즐긴다는 것에 분개한 창작자들은 숱한 소송을 디지털 컨텐츠 업계에 걸었지만, 웹하드/P2P/토런트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신기술 앞에서 전통적인 소송은 무력할 뿐이었다. 수년만에, 씨디를 사는 건 바보같은 행동이거나,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극단적인 팬질(팬으로서의 활동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의 일환이 돼버렸다. 5분내로 원하는 앨범 전체를 공짜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저작권자들은 절망했다. 2년 전쯤인가, 자우림의 김윤아 씨는 다음과 같은 절망적인 표현을 인터뷰에 사용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음악계는 즐겁게 망해버릴거에요”. 디지컬 컨텐츠의 해악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급갑하는 음악시장 규모 속에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없이 음악 판매만으로 밥벌이를 해야하는 뮤지션에게 미래는 암담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인터넷과 MP3플레이어가 음악이라는 문화 컨텐츠 유통의 지평을 완전히 바꿔버린지 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상의 모습은 어떤가. 놀랍게도, 10년만에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음악시장이 거의 망하다시피 할 정도로 위기를 맞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는 다가올 10년이 지나간 10년 보다 훨씬 더 풍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숱한 소송에 시달리던 온라인 음악 서비스 업체들, 벅스뮤직이나 소리바다 같은 전설적인 이름들은 이제 완전히 합법적인 사업으로 자리잡았고 매년 아주 빠른 속도로 매출과 수익성을 높여가고 있다. 돈받고 음악을 다운받는 바보같은 행동이라던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P2P에 대한 통제가 불법적인 음악 공유를 근절시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런 행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고, 월 1만원 정도로 원하는 음악을 아주 편하게 들을 수 있고, MP3플레이어에 최신곡을 속편하게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이 폭넓은 유저층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온라인 음악서비스 업체들은 이제 DRM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다운 받은 이후에 제한없이 공유할 수 있는) MP3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은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서비스 업체에 지불하고 있다. 저작권자들도 (예전 CD만큼 짭짤하진 않지만) 온라인 컨텐츠 서비스 업체들로부터 저작권료를 수취하면서 다음 창작 활동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음악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어느 정도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을까. 이코노미스트지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표현이 이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것 같다.

“저작권 침해는 그것이 사용자들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에 번창했다. 해적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그만큼 매력적인 합법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음악시장이 디지털 컨텐츠라는 치명적인 뉴 테크놀러지를 맞아,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0년만에 희망의 싹을 찾게 된 건 강력한 DRM(복제방지) 기술 때문도 아니었고, 천문학적인 벌금이나, 강한 경찰력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정정당당하게 돈을 내고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도덕적 결단을 내릴 정도로 10년 사이에 착해져서도 아니었다. 사용자가 스스럼없이 돈을 지불할만한 상대적으로 편한 서비스때문이었다. ‘해적질’에 맞설 만큼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던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음악 저작권자들이 컨텐츠 유통업체들에게 소송과 같은 딴지를 걸지 않았다면 10년이라는 세월이 좀더 단축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차라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협력해서 더 나은 서비스를 개발했다면 지금보다 온라인 음악시장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이제까지 없던 무언가가 세상에 소개되면, 반드시 효용과 비효용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MP3처럼, 순식간에 기존 음악시장의 플레이어들을 잔혹하게 위협하기도 한다. 처음에 이런 문제가 나타났을 때에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에 세상에 존재하던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존재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문제는 결국,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거짓말처럼 해결된다.

지난 10년간 디지털 음악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인간의 경제적 행동은 cost와 benefit이라른 2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해서 결정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더불어,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더라도, 결국 인류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에 환경이던 산업이던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낙관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다소 거창한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