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투자

군에 있을때, 나는 북한 지형정보를 관리하는 특기를 가진 병사였다. 복무 중 어느 날, 몇개월의 작업 끝에 전자지도 상에 북한 장사정포/미사일 부대를 표시하는 일을 끝내고 난뒤, 입력한 정보를 화면에 띄워보았던 적이 있다. 북한의 부대는 빨간색 점으로 표시되게 돼있는데, 막상 화면에 위치를 모두 띄어보니, 빨간 점으로 지도가 온통 뒤덮여 아예 지형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쪽을 노리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는 그렇게나 많았다. 

참혹한 연평도 포격 사건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적대세력을 우리가 자동차로 두어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마주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앞으로 수년간, 어쩌면 또다시 수십년간 우리는 이 슬픈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북한과의 관계 속에 우리가 감당해야할 불안과 부담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은 애초에 '가능성'의 범주에 두어선 안된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존재 위에서만 성립되는 것인데, 모든 것을 파멸시킬 전쟁을 가정해놓고 어찌 삶을 꿈꿀 수 있을까. 북쪽 정권이 자꾸만 '공포'를 수출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우리는 부족한 힘으로나마 불안한 균형을 회복하려 애쓰며 우리가 일궈놓은 것들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의 위협이 아무렇지 않다라거나 연평도 포격이 단기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불안과 공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고 해서 그것들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불안요인이고, 경제적으로 말하면 할인요인인, 북한의 위협을 인정하긴 하자. 하지만, 우리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까지 의심하지는 말자.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북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8년전인 2002년 겨울, 아직 대학생일때 '대학투자저널'이라는 학내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 생각났다. 세월이 흘러서 나조차도 잃어버린 글이었는데, 후배들이 자료를 잘 보존시켜준 덕분에 나도 8년 만에 내가 쓴 글을 읽어볼 수 있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2002년 마지막 날 조금 이른 저녁 서울 광화문.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모이기는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날 광화문에는 초저녁부터 촛불을 손에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을 거둔 두 소녀를 추모하는 거대한 행렬. 그리고 그들을 막기 위해 도로를 완전히 봉쇄한 경찰들. 두 무리가 한 데 뒤엉켜 있는 모습은 한 해의 마지막 날 풍경이라고 하기에 너무 낯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촛불을 손에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2002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12월30일 증시 대폭락이 떠올랐다. 시민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미군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한국 증시 불안의 근본 원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이른바 ‘박스권 주가’라는 오명을 달고 있는 한국 증시. 항상 그 족쇄의 원인으로 꼽히는 말이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 즉 ‘국가위험도’다. 북한의 존재 탓에 우리 증시는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늘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경제특구법 입안과 추진 직후에 핵개발 재개를 발표하는 등 좌충우돌 외교를 보이는 북한. 요즘 같은 북한의 변덕과 극단적인 노선이 과거부터 항상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주요 원인이었던 셈이다. 

‘풀지 못한 숙제’ 같은 북한 문제와 우리 증시 사이에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을까. 북한 문제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1990~2002년 월간 종합주가지수 시계열 자료에 중요한 대북 사건이 일어난 때를 표기해 봤다.


1990~2002 대북관계의 변화와 월간 종합주가지수 추이

그래프에서 검은색 배경에 흰 글씨로 표시된 것이 남북관계 경색을 부른 사건이다. 단기적으로 북한 악재가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월간 종합주가지수 추이와 북한 사건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1993, 94년 때는 북한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겨졌던 시기.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북한 핵문제가 불거졌다. 그리고 이어 1994년 3월 남북 특사교환 자리에서 북측은 “서울이 불바다가 될 수 있다”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 발언으로 ‘곧 전쟁이 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하지만 그 때 종합주가지수의 대체적인 추세는 94년 10월 주가 1100선의 고점을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NPT탈퇴 선언과 ‘불바다’ 발언 직후 한 두 달 정도 지수가 하락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수는 1000 포인트를 넘어섰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됐고 북미 관계도 화해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수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저점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결론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과 관련된 이슈는 증시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악재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증시의 큰 흐름 자체를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다. 어느 정도 전쟁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컨트리 리스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간순간 상황 변화에 따라 증시의 모든 것이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국가 위험에 대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순전히 그 영향으로 우리 증시가 박스권 안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컨트리 리스크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단기적으로 증시를 뒤흔드는 것은 ‘외국인’도 아니고 ‘세력’ 도 아닌 바로 투자자 자신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우리 기업 이익이 당장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제 개방이 빨라진다고 우리 경제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투자자들은 오히려 외국인보다 더 민감하게 컨트리 리스크에 반응한다. 만약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그 때는 증시도 경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을 투매한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극단 상황에 준비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막상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는 어떤 경제적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보다 차라리 대북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희망을 걸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대안이 아닐까. 

우리 기업과 경제의 가치에 걸맞은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 안정적인 증시를 만들려 노력한다면 컨트리 리스크라는 족쇄를 걷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디스카운트 요인을 덜어버리고 박스권을 벗어난 증시의 새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투자자인 우리 자신의 몫이다. 월드컵 응원, 대통령 선거, 그리고 여중생 추모를 위한 집회에서 보여준 우리 시민들의 결속력과 의지가 부디 2003년에는 증시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주길 기원해 본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어줍잖게 썼던 글이니 뭘 알고 썼겠냐만은 이 때 생각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사실, 현재의 주식시장은 이 글을 썼을 때와는 반대로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지수가 500~1000에서 맴돌던 8년전과 지수 2000에 육박한 지금의 상황은 여러모로 다르다. 상황이 다른 만큼, 대처방법 역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안을 보는 철학 자체는 다를게 없을 것 같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당연히 나지 않는다.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당연히 취해야될 전제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지 않는다면, 지금껏 그래왔듯 우리는 북한이라는 불안과 위협 요인을 끌어안고 또 발전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연평도 사건의 해결, 중국의 6자회담 제안에 대한 대응, 향후 대북 정책의 노선 같은 문제들은 그것을 맡고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일임하고, 우리의 관심 사안에서 지우자. 우리는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낼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전과 다름없이 시장을 보자. 그게 북한이 아닌 시장을 마주대하는 사람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