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용등급 하락, 원화강세 압력의 상존.. 정말 국내 기업들에 대한 악재인가?

최근에 일본 신용등급 강등과 그에 따른 국내 수출기업들의 주가 하락 이슈가 있었다.
몇몇 이코노미스트들은 신용등급 강등에 따라 일본 엔화 약세로 한국 수출주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엔화 환율에 대한 일반의 중대한 오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거 엔화가 과도하게 강세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 수준에 대비해서 실질적인 환율을 계산해보면 엔화는 사실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약세을 보여왔다. 

IMF와 OECD에서는 공식적으로 실질 유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 약자로 REER라고 함)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있다. 이 REER는 각 나라의 인플레이션 수준을 반영해 명목상 환율을 수정하여 계산된다. 국가간 교역조건에는 환율뿐만 아니라 물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2가지 조건을 동시에 반영한 REER는 이름 그대로 "실효환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달러대비 인덱스 형태로 발표되는데, 이 인덱스 숫자가 올라가면 실질적인 환율강세를 의미하고, 내려가면 환율 약세라고 할 수 있다. IMF가 집계하는 REER를 보면, 아래 첨부한 그림 파일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엔화는 최근 2~3년간의 강세기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8~90년대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엔화가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데, 왜 REER는 반대로 나올까?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일본은 과거 10년간 지속적으로 디플레이션 상황에 처해있었다. 반면에,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2000년 이후 커머디티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매우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해왔다.(특히 04년 이후로..) 다른 제반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price parity(지역별로 공산품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일본의 엔화 명목환율은 국내의 디플레이션 때문에 당연히 초강세를 보이는게 맞다. 최근 엔화 환율이 강세를 보였지만, 이는 펀더멘털로 본다면 당연한 결과였고, 엔화강세 기간에 REER가 오히려 떨어진 만큼 실제 엔화의 움직임은 오히려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과 엔캐리 때문에 이러한 펀더멘탈 요인에 미달한 수준의 강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가파른 엔화 상승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들이 줄줄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경기사, 일본기업 엔고맺집 세졌다.)

교역조건 상의 실효성을 감안하면 달러대비 엔화 수치가 낮아졌다고 무조건 엔화강세로 보면 안된다.엔화는 오히려 펀더멘탈에 비해 약세였고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신용등급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대폭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일본과 기타 교역국가간의 물가 수준 격차를 감안시 현재 수준에서 오히려 아직도 엔화에는 절상압력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과거와 같은 엔캐리를 기대할 수도 없어 엔화는 오히려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가능성까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REER라는 개념에서 환율을 보면, 원화절상에 따른 국내 기업의 실적 영향도 전망해 볼 수 있다.
위 그래프는 내가 작년 8월에 작성한 것이라 그 이후 데이터는 없는데, 그간 원화는 다소 강세를 보였으므로 원화의 REER는 저 그래프 끝지점 보다 약간 높을 것이다. 조금 올랐다고해도 원화의 REER는 2007년에 비해 여전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97년 IMF 사태이후 평균치로 놓고보면 그렇게까지 현저하게 약세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원화가 강세 기조를 보일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현재 REER위치를 봤을 때, 그리고 국내로의 외화 유입이 2006~2007년 수준에 달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을 때 원화강세가 통제할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덧붙여서, 
국내 수출 기업들의 글로벌 마켓쉐어가 크게 늘어난 2004~2007년 기간 동안, 원화의 REER는 초강세였다. 반대로 같은 기간 중국의 REER는 급속하게 떨어졌다. 즉, 국내 주요 수출기업인 IT,오토,중공업은 그닥 우호적이지 않은 환율 상황 속에서(어쩌면 아주 안좋은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낸 것이다. 

현재 REER 수준이 낮고, 앞으로 원화강세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내 수출기업들의 실적 모멘텀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원화의 명목환율이 강세로 간다고 해서 삼성전자, 현대차의 상황이 과거로 회귀한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다시말해, 비록 모멘텀은 죽었지만 최근 5년사이 국내 수출기업들의 이익 수준이 레벨업된 것은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아직 시장에 서식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구닥다리 가치투자 추종자 중의 한 명으로서, 나는 시클리컬 주식들(경기순환주/대형수출주)의 주가 약세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처럼 '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났고 시클리컬은 골로 갈 일만 남았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익 모멘텀은 이제 없어졌지만, 시클리컬의 이익 수준이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클리컬 주가가 내려와서 가치주와의 괴리가 해소되는게 아니라, 삼전, 현차, LG화학 같은 업종 대표주들의 주가는 여기서 굳어주고, 소외됐던 가치주가 따라붙어서 적어도 마켓대비 20~30% 디스카운트 받는 수준 정도까지 올라주는 상황을 희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