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심리, 투자심리, 가치투자의 재정의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경제주체'들이 갖는 재화에 대한 수요는 가격과 역의 관계가 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러한 정상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소비현상들이 현실에서 발견되는데,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에서는 몇가지 말장난을 해놓았다.

대표적으로 3가지가 있는데,

1)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  :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가 커지는 효과. 고가 명품 같은 사치재가 대표적이다.

2) 스놉 효과(Snob Effect) :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고자하는 욕구 때문에, 재화가 희소할 수록 수요가 커지는 재화들.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것들.

3)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 : 군중심리에 의해서 구매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요가 더욱더 커지는 현상. 유행을 따르는 핫한 아이템들이 이런 효과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기 3가지 효과들이,
가격과 수요간의 일반적 관계를 허무는 현실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개념은 투자세계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주식투자도, 주식이라는 대상을 구매하는 행위이니까 일단 소비와 유사한 행동이랄 수 있겠다.
상식적인 소비가 그렇듯 상식적인 투자는 주식의 가격이 가치에 비해 싸지면 더 많이 사야하고, 반대로 비싸지면 덜 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밴드웨건 효과가 아주 자주 관측된다.
소위 '주도주'라고 부르는 개념의 주식이 늘 시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주식시장에서 밴드웨건 효과가 만연한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유행하는 주식은 항상 있고, 이런 주식들은 저평가/고평가 여부에 상관없이 투자자들을 몰고 다닌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는 밴드웨건 효과가 아주 강했다. '자문사 7공주'니 '차.화.정'이니 하는 궁벽한 표현들이 난무하며 시장이 3년 가까이 주도주 중심으로 과도한 쏠림 현상을 보였다. 

주가가 오르면 오를 수록 더 많은 투자자들을 매혹시키는 베블렌 효과도 자주 관측된다. 기본적으로 추세분석에 기반한 기술적 분석들이 성립하는 이유는 주식시장에서 베블렌 효과가 실존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스놉효과도 관측된다. 시장에 어떤 테마가 나타났을때, 그 테마에 해당되는 기업의 수가 적으면 비정상적인 고평가 상태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2007년에 태양광 테마가 강했을때에는 거의 유일한 투자 대안이었던 OCI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됐었고, 최근에는 KAI가 상장되면서 주식시장의 유일한 우주항공 관련 종목으로 엄청나게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다. 

이렇게 소비와 투자에는 공히, 상식적 관계를 깨는 현상들이 관측된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그런 현상들이 발견되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소비에 있어서 베블렌/스놉/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의 사회적 심리 때문이다.
남들보다 튀고 싶고,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싶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싶어하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 
물건이 비쌀수록, 물건이 귀할수록, 물건이 유행할수록 가격을 따지지 않게 만든다.

투자에 있어서 베블렌/스놉/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이와 다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자신만의 아이덴터티를 인정받고 싶어서 OCI주식을 사는 사람도 없고 
현대차를 안사면 유행에 뒤떨어진 센스없는 사람이되는 것도 아니다.

투자자가 모멘텀, 유행, 수급 등 가치와 무관한 요소를 쫒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오늘 거침없이 오르는 주식은 내일도 오를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 가치 대비 높은 프리미엄을 거리낌없이 부여할만큼 인기가 있는 주식이라면 향후 몇 달간 성과가 좋을 확률이 높아보일 것이다.
재화는 소비를 통해서 재화에서 어떤 효용을 얻어내는 것이지만,
투자는 매수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효용을 주지 않는다. 오직 매수한 가격보다 비싼 값에 매도할 때에만 효용이 발생한다.
합리적이 경험많고 소양있는 투자자라고 할지라도, 내일 주가가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아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식 매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소비에 있어서 베블렌 효과 같은 현상이,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난 사회적 논리에 의거한 것이라면
투자에 있어서 유사한 현상들은, 오로지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만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 시장의 베블렌 효과는, 사회적 환경이 변하면 증가하거나 소멸될 수 있다. 
하지만 주식 투자의 의의가 주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되팔아 이문을 남기는 것에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베블렌/스놉/밴드웨건 효과는 끝없지 반복되는 본질적인 현상이다. 
주식시장이 존재하고, 주식을 이용해서 시세차익을 보려는 투자자가 존재하는 한 이같은 현상은 영원할 것이다. 

흔히, 가치투자는 이러한 가격-수요의 비상식적 관계에서 탈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장이 비싼 주식과 유행하는 주식을 선호할 때, 나홀로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사는 것이 진정한 가치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설픈 가치투자자들이 비판하는 '시장의 비합리적 투자행위'는 그 자체로서 시장의 본질이다. 
가치투자를 한답시고 시장의 본질을 외면하고, 소통을 거부한채 홀로 싸다고 생각하는 주식을 사는 것만으로는 적정한 투자 수익을 창출할 수가 없다.
좀더 실무적인 의미에서, 가치투자자는 고집불통 합리주의자가 아니라, 시장의 비합리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경험많고 유연한 기회주의자이다. 

어떤 주식을 가치 대비 굉장히 싸게 살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베블렌 효과 등에 빠져 어떤 주식을 비합리적으로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의 비합리가 없다면, 내가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좋은 투자기회는 발생하지 않는다.

가치투자가 성립하려면 시장이 항상 조금씩 비합리적이라는 가정을 수용해야 한다. 비합리적 시장이 현재의 불안한 위치에서 다른 어딘가 또다른 불안한 곳으로 쏠리는 경로에, 봉이 김선달 식으로 진을 치고 앉아있는게 가치투자다. 

성공한 가치투자자들의 투자 사례는 대부분 시장의 비합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드라마틱한 수익률를 창출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들의 저서들을 보면 대부분의 자신들의 교활함은 감추고서, 과거 투자 사례들을 원칙을 고수한 인내의 산물로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따금 이런 책들을 보면 자신의 경력을 고결하게 만들고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는 것처럼 꾸미면서 정작 자신의 진짜 노하우는 살짝 숨겨놓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다소 무리가 있는 표현을 쓰다보니 정확한 전달이 되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
재차 강조하자면,
책에서 나오는 가치투자와 실제 투자에서 효과가 있는 가치투자는 다르다. 
책에서는 기업의 가치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치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주가의 움직임을 근면하게 살피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