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경제적 귀결 2 : 코스닥 활성화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발하여 지지율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지방선거 압승으로 탄력을 얻으려 한다. '바보야, 중요한 건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이라는 90년대 클린턴 선거 캠페인의 공약처럼, 선거의 핵심은 경제관련 이슈일 것이다. 6월 선거 전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중에 무언가 상징적인 업적이 상반기 중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크게 일자리/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가지로 구분된다. 3가지 주된 정책 방향은 당선전 대통령께서 공약집을 통해 제시하신 경제정책 방향과 대동소이하다. 공정경제는 경제영역의 적폐청산이다. 대기업 지배구조와 금융권의 기득권이 주로 타겟이 되고 있다. 일자리/소득주도 성장은 대기업/자본가 중심의 소득분배 구조를 중소기업/근로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여기에 실질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재정지출을 확대해서 경제 양극화를 완화함과 동시에 소비지출을 자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기업에 대한 압박과 소득분배의 개선은 근원적으로 국내 투자위축과 생산성 저해에 대한 우려를 볼러올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 혁신성장이다. 4차산업혁명에 시대에 발맞추어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혁신생태계를 만들어 투자를 이끌어내고 비용상승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 운용방향 (기획재정부)


공정경제와 소득분배의 조정은 정책 집행과정이 소란스러울 수는 있어도 사실 정부가 추진하기 쉬운 정책이다. 공정경제는 정부의 고유 영역인 사법기능과 감독기능을 통해 구현할 수 있고, 소득분배 조정 역시 정부의 권한인 조세제도와 직접 재정지출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민간의 영역인 혁신과 투자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이냐이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와 타인의 행동을 어떻게 유도할 것이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이후 일본경제에 경천동지할 변화를 일으킨 아베노믹스에 3가지 화살이 있는데 양적완화, 기동적 재정지출, 생산성향상이다. 앞에 2개의 화살은 역시 정부의 고유 영역이므로 목표했던 바를 이를 수 있었지만 민간의 영역인 3번째 화살은 아베노믹스에서 흐지부지 됐다. 앞선 정부의 소위 '창조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거시적인 변수들을 타겟팅하는 전략의 농도가 옅기 때문에, 혁신성장의 영역이 구체성과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칫 '정부가 적페청산에만 주력할 뿐 성장정책은 없다'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여러가지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가 R&D예산을 편성하고 정부출연 모태펀드를 키우는 등 정부가 직접 투자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와 차별화되기 어려운 정책들이다. 혁신성장이라는 스스로 출제한 고난도 문제를 놓고 정부가 차별화 포인트로 내놓은 것이 코스닥시장 활성화다. 신규 일자리가 생기려면 벤처 창업이 늘어나야 하고, 벤처 창업이 늘어나려면 모험 투자가 많아져야 하고, 모험 투자가 많아지려면 모험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시장인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모험자본이 벤처 생태계로 흘러들어가게 만들겠다는 논리는 좋다. 그러나, 정부가 목표로 삼은 코스닥은 매일매일 탐욕과 공포를 넘나들며 거친 거래가 일어나고 있는 말그대로 '시장'이라는 점을 반드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탈에 모태펀드 자금을 나눠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정부의 영역이 아닌 민간의 영역을 통제하려는 욕구, 혹은 필요성은 늘 존재해왔다. 이 역사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순간 엄청난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작년 연말 정부는 코스닥활성화의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시장참여자들은 정부가 시장의 기능적인 요소들을 활성화 시키는 차원을 뛰어넘어 코스닥 지수 자체를 부양하겠다는 목표를 묵시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석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시장의 야성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가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비중확대 민간자금 유도를 내용으로 하는 코스닥 활성화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시중에서는 즉시 수조원의 자금이 코스닥시장로 유입되었다. 작년말 집중적으로 유입된 자금은 정부가 원하는 모험자본이 아니다. 모험자본은 투자한 기업이 성공해야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작년 말부터 유입된 자금은 정부가 연기금 등을 동원하여 코스닥에 자금을 쏟아 넣을 때, 미리 사놓은 주식을 이들에게 비싸게 팔아 수익실현의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정책에 대한 선행매매(Front-running)적 성격을 가진 투기자본이다. 정부가 코스닥 지수 자체를 타겟팅하니 단기 투기자본들은 귀찮게 기업을 분석할 필요없이 코스닥 지수 자체를 사는 ETF에 몰려들었다. 작년 12월 이후 4개월 동안 코스닥 지수 관련 ETF에 유입된 자금이 2조5천억이 넘는다. 


코스닥 관련 상장ETF(16개)의 누적자금유입 추이
(2017.1.1~2018.4.6)  


ETF는 상장된 기업을 정해진 비중대로 무심하게 주식을 사고 팔 뿐, 기업의 비젼이나 일자리 창출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주식의 주가가 올라서 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ETF는 오른 주식을 더 많은 비중으로 사들인다. 오르는 주식을 더 사는 일종의 모멘텀 펀드이다. ETF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는 코스닥150 지수의 시가총액 절반을 바이오 기업이 차지한다. 코스닥 ETF는 사실상 바이오기업 ETF가 되고, 코스닥 ETF로의 자금유입은 바이오기업의 주가 상승과 직결된다. 정부의 코스닥활성화 정책은 민간의 코스닥 선취매 투기 활성화 정책이 되었고, 이는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의 무차별적 주가 상승 정책이 되었다. 


주가지수 상승률(2017.8.1~2018.4.4, 블룸버그)
[KOSPI200, MSCI한국가치주, 코스닥, 코스닥150, 코스닥150바이오]


작년 8월1일부터 올해 4월 4일까지, 대형주 중심의 코스닥200지수는 -2.68% 하락했고, 상장기업중 저평가 가치주를 추종하는 MSCI한국 가치주 지수는 -6.1% 하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는 32%나 상승했고, ETF의 투자대상이 되는 코스닥150지수는 52.65% 올랐다. 코스닥150 바이오 지수의 상승률은 지난 8월 이후 82%에 달한다. 코스닥 바이오의 최근 주가 상승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해외 바이오 지수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주가지수 상승률 비교 (2017.8.1~2018.4.4, 블룸버그)
[코스닥150바이오, 나스닥 바이오, MSCI월드 바이오]


코스닥150 바이오 지수가 82% 오르는 동안 미국 나스닥의 바이오 지수는 0.63% 오르는데 그쳤다. 전세계 선진국 증시에 상장된 바이오테크 기업들을 추종하는 MSCI월드 바이오지수는 같은 기간 -3.97% 하락했다. (환율 효과를 감안해도 -2.9% 하락) 

이런 '나홀로' 상승 덕분에 한국 바이오 산업의 위상은 '적어도 시가총액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상위 50개 제약/바이오 업체 리스트에 한국은 2개의 기업을 올려놓고 있다. 그런데 50개 기업 중 매출이 10억달러(1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딱 2개 있는데 바로 그 2개의 한국 기업이다. 참고로, 전세계 시총 상위 50개 제약/바이오 기업의 매출 중위값은 113억달러이다. 평균 10조 이상의 매출액에 수십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유지하는 기업들의 리그라는 뜻이다. 한국 바이오 기업의 벨류에이션은 해외의 바이오제약사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 넘는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리제네론, 셀트리온, 아스텔라스의 재무현황 비교


한국 바이오 산업을 대표하는,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3위에 빛나는 셀트리온과 비슷한 시가총액을 가진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재무상황을 보자. 시가총액 기준으로 나스닥에 상장돼있는 리제네론이 전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26위, 셀트리온이 27위, 일본증시에 상장돼있는 아스텔라스제약이 29위이다. (28위는 한국 시가총액 4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이다.) 리제네론은 셀트리온이 활약하고 있는 항체의약품 분야의 신약개발 전문기업이니 좋은 비교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셀트리온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향후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리제네론, 아스텔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2년 후의 매출은 1/7~1/10이고 이익은 1/3에 불과하다. 혹시 셀트리온이 이 두 회사를 압도할만큼 강력한 성장성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으나, 2017년 기준 R&D에 쓰는 비용이 1/10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두 회사를 뛰어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 "한강의 기적"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익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에 상장된 리제네론과 일본에 상장된 아스텔라스가 비슷한 벨류에이션에서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리제네론과 아스텔라스의 벨류에이션이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한국 바이오 기업의 비싼 몸값은 셀트리온만의 일이 아니다. 전체 시가총액 10조달러(1경1천조원)에 달하는 나스닥 시장에서 우리가 소위 '유니콘'이라고 부르는 시가총액 10억달러 이상의 제약/바이오 기업은 93개(4/6 기준, 블룸버그 산업분류 기준)가 있다. 한국 코스닥에는 18개가 있다. 나스닥의 시가총액이 코스닥의 41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시장규모는 1/41인데 바이오 유니콘의 수는 1/5 이다. 셀트리온처럼 외국인들보다 10배의 효율을 내는 기업이 코스닥에 이렇게 많다. 반년도 안되는 시간에 이뤄낸 한국인의 개가다.

어떤 자산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고,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을 버블이라고 부른다. 올해 내내 코스닥에 투기자금이 계속 몰리고, 연기금이 들어오면 이 높은 가격이 더 높아지고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위적인 자금흐름으로 자산가격의 고공비행을 지속하는데에는 언젠가는 끝이 온다. 

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이 블로그에 '가상화폐 투기에 대하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세상 변화에 늘 한 발 늦고 잘못된 판단으로 후회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산의 적정가격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보내온 시간으로 반추해 볼 때 작년말의 가상화폐 투기는 도저히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력이나마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쓴 글이었다. 평생을 열망의 대상으로 바라 본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서 불과 100일 뒤에 같은 의도의 글을 쓰게될 줄은 그 때 몰랐다. 연말연시 거래가 가장 많았던 가상화폐 중 하나인 리플의 가격은, 필자가 글을 쓰고 나서도 3배가 더 올랐고, 그 이후에는 1/10로 하락했다.

혹자는 "버블은 나쁜게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버블이 있어야 자금이 몰려 새로운 투자도 벌어지고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고. 이렇게라도 해서 한국에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시켜야 되는것 아니겠냐고. 버블은 그것의 순기능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사회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첫번째, 버블이 붕괴되면 단기간에 다수 대중이 막대한 자본 손실을 보게 된다. 지난 두 달 사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얼마나 많은 손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발생했는지 생각해보자. 두번째, 버블이 붕괴되면 버블 시기에 형성된 과잉투자와 버블붕괴의 충격으로 해당 산업에 신규투자를 꺼리는 경향 생기고 이 때문에 산업 발전이 오히려 후퇴한다. 아마존이 미국 전자상거래를 독식하고, 네이버가 국내 검색시장을 독식한 것은 위대한 창업자들의 역량도 있었겠지만 IT버블 붕괴이후 이들 기업들만 자본에 대한 용이한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 이후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5년 가까이 투자암흑기를 맞아야 했다. 세번째, 버블로 자금이 넘치고 투자가 쉬워지면 건실하게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사람들 보다는 세상을 이용해서 단기간에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시장에 늘어나게 된다. 임상시험을 성공시키기 보다는, 진짜 기술을 개발하기 보다는 뉴스를 만들어 주가를 폭등시키려는 욕망은 투기가 넘치는 시장에서 필연적으로 꽃피울수 밖에 없다. 가상화폐 시장이 타올랐을때 가짜ICO가 넘쳐났던 것과 다를바 없다. 실체 파악이 힘든 해외 바이오 기업을 인수했다는 뉴스를 내고 단기간에 주가를 폭등시킨 뒤 주식을 파는 식의 불공정 행위가 한 두 종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이오 기술이 미래의 성장동력이고 많은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 산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책의 목표가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이라면 바이오산업은 그 수단이 되기 어렵다. 혁신과 벤처, 모험자본은 소수의 운좋은 천재들과 역시 소수의 약삭빠른 자본가를 부자로 만들지 다수 대중의 실질소득을 증대시켜주지 못한다. 코스닥 시총 상위의 바이오 신약개발 업체들의 2017년말 임직원수를 보자. 시가총액 7조의 신라젠은 43명, 시총 4조에 육박하는 바이로메드는 72명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GM의 임직원수가 16,000명이고 1~3차 협력업체의 고용유발이 10만명이 넘는다. 한국GM이 소멸했을 때 생기는 고용공백을 바이오 기업 몇 개로 메꿀 수 있을까.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임직원수(2017년말 기준)


이 글은 "정치의 경제적 귀결 1 : 평화와 무역전쟁"에 이어서 쓰는 글이다. 민의를 바탕으로둔 정치권력이 대의를 위한 정책을 수행했는데, 의도와 달리 경제적 불균형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불필요한 사회 불안을 야기하여 결국 정치의 위기로 전이되는 인간사의 반복되는 패턴이 100년전 케인즈의 통찰에서부터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코스닥의 투기열풍에 까지 이르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코스닥 활성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발빠른 투기자본은 이미 가격을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올려놨고,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코스닥 시장에 들어오면 국민의 은퇴자금으로 소수의 투기적 선행매매를 성공시켜주는 꼴이 된다. 

코스닥 바이오가 단기간에 놀라운 수익률을 보여주는데다가, 정부가 올해 내내 줄줄이 코스닥 시장에 자금투입을 유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투자자들은 이런 트렌드가 장기간 지속된다고 점점 더 믿기 시작했다. 이는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가 아닌 주식을 팔아 코스닥 바이오를 사도록 한다. 시장 내에서 수급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무역전쟁 우려로 시황이 나빠지면,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된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내일 오를 가능성이 더 높은 주식으로 몰리는건 인지상정이다. 가격 불문 바이오가 아닌 주식을 팔아 바이오를 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주식은 버블의 수준까지 끝도없이 주가가 오르고, 어떤 주식은 아무리 싸져도 끝없이 주가가 하락한다. 그 결과 한국 주식시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싼 주식과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이 됐다. 금융시장의 존재목적이자,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싱(Pricing) - 가격결정기능이 상실됐다는 뜻이다. 의도한 결과는 아닐 것이나, 야성이 넘치는 시장에 정책이 개입한다는 것의 위험성이 이런 것이다.